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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전 미군유해 발굴 실버스타인 박사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JPAC의 지휘를 맡은 제이 실버스타인 박사와의 인터뷰를 보내드립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가 실버스타인 박사를 인터뷰했습니다.

) 제이 실버스타인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발굴 작업은 미국과 한국 두 나라가 공동으로 펼치는 거죠?

답)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국 군 당국의 협조가 있었지만 발굴팀을 공동으로 구성해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젊은 한국 요원들은 이번 경험을 통해 발굴 현장을 통제하는 방법이라든지 연구실로 갖고 가야 할 것들을 선택하는 요령 등에 대해 배울 것으로 기대합니다.

) 지난 14일부터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재까지 실적을 말씀해주시죠.

답) 뼛 조각과 미국산 만년필, 탄피와 탄두 등을 발견했습니다. 뼛 조각은 너무 작아 확실치는 않지만 손가락뼈의 일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년필에는 파커 유에스에이(PARKER USA)라는 문구가 있었고 탄피와 탄두는 생산년도인 '1944' 또는 '1951'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뼛 조각은 미국으로 갖고 가 정밀 유전자 검사를 거쳐야 하며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2주에서 6개월이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 박사님 개인적으론 한국에서 4번째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이 한국에서 정권교체도 있었는데요, 정치 환경의 변화가 발굴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요?

답)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선 한국전쟁 당시 실종자를 찾는 작업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마치 베트남전 이후 미국에서 유해 찾기 운동이 벌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실종자를 다룬 영화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 북한에서도 발굴 작업을 하셨죠, 당시 경험담을 소개해주시죠.

답) 2005년 북한에서 발굴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발굴팀은 6백에서 7백구의 유해를 찾아냈고 지금도 5천구 정도의 유해가 북한 땅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 팀은 북한 군에 둘러싸여 작업을 벌였습니다. 함께 일한 북한 군인들은 협력적이었고 자기 맡은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당시 지휘관은 존경 받을 만한 인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반 국민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당국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사님이 JPAC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이 일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답) 1992년까지는 경찰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들어가 2000년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2년 합동전쟁포로 실종자 확인사령부 즉 JPAC에 참여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 용사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전사했다고 상상하면 유가족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실종자들을 고향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년부터 비무장지대 즉 DMZ에서 미-한 공동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벌일 계획인데요, 이 작업에 참여하십니까?

답) DMZ에서 조사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굴 계획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DMZ는 유엔이 관할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내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많은 전사자를 낸 그 곳에서 많은 유해가 발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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