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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 지구촌] 태국 (1)


미국내 다양한 민족들을 만나보는 시간, 미국 속의 지구촌 입니다. 김현숙기자 함께 했습니다.

문: 지난 2주에 걸쳐 미국 내 쿠바인들을 만나봤는데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에 대한 일부 경제 재제와 여행금지 조치 해제 등을 시행하는 등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변화를 맞고 있는 이 때, 미국에서 살아가는 쿠바 이민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이민자들을 만나게 되나요?

답: 네, 오늘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을 만나보려고 하는데요 이 나라는 우리 청취자들께도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 나라는 왕이 존재하는 세계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푸미폰 아둔야뎃 라마 9세 현 국왕에 대한 태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은 상상을 초월해서 마치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고 하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리 안정적이질 못합니다. 지난 4월에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과 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 때는 반정부 시위대의 회의장 난입으로 개막 하루 만에 취소되기도 했구요.

문: 아세안 회의가 취소된 나라라…바로 태국이군요. 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한동안 전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구지 않았습니까?

답: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태국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가 또 한가지 있는데요,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주요 거점으로 삼는 곳이 바로 태국이기 때문입니다. 태국은 동쪽으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남쪽으로 말레이시아, 서쪽으로 버마와 접하고 있어서 탈북자 뿐 아니라 인근 국가들의 난민들이 대거 모여드는 나라라고 할 수 있죠.

문:태국은 그런 면에서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런 태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어떤 계기로 미국에 건너왔고 또 미국에서는 어떻게 살아 가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답: 어느 나라 이민자 집단이든 모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민자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태국도 마찬가지인데요 미국내 태국 이민자들 즉 타이 어메리칸에 대해 조사하던 중 The Thai Alliance in America, 미국내 태국인 협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 국왕의 아버지에 의해 설립된 역사적인 이민자 단체인데요 타닛 탕필자이쿨씨의 말을 들어보시죠.

(남: ‘미국내 태국인 협회’는 설립 90주년을 맞는, 태국이민자들의 단체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협회입니다. 현 국왕인 라마 9세의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공부하실 때 설립한 단체인데요 현 국왕도 사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셨답니다. 아무튼, 처음에 이 단체는 미국 내 태국 유학생들의 교류를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1년에 한번씩 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태국 유학생들이 모임을 갖는 등 학생들이 주도하는 단체였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학생들이 모국으로 많이 돌아가고, 다들 단기적으로 머물다 보니 단체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어요. 최근 2~30년 전부터는 지역 내 태국 이민자들의 단체로 자리 잡으면서 학생들은 협회 활동에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저희 협회는 미국에 있지만 국왕의 아버지가 설립한 단체답게 1년 중 가장 큰 행사도 12월 5일, 현 국왕의 생신이랍니다.)

문: 국왕의 아버지가 세운 유학생 단체라. 미국 내 태국 인들에겐 정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태국의 이민 역사가 유럽국가들 처럼 길진 않을테고…90년 이라면 태국의 초기 이민 역사와 거의 맞먹을 것 같은데요?

답: 네 그렇습니다. 1900년대 초, 초기 이민자들은 국왕의 아버지 처럼 유학생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 수도 많지 않았는데요 1960년대 들어서 급격히 늘어나 현재는 미국내 태국인들이20만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그런데 태국 이민자들이 이렇게 급격히 늘어난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습니다.

(남: 태국인들의 미국 이주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정말 적은 수에 지나지 않았죠. 그런데 1964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 태국인들의 미국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베트남 전쟁 때 태국이 미국을 돕게 되면서 미 공군 기지가 태국에 세워지게 됩니다. 그 때부터 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많은 태국 여성들이 미국 군인들과 결혼을 하면서 미국에 오게 되죠. 또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대해 알게 된 태국인들이 6~70년대에는 유학생의 신분으로 많이 건너오게 되구요, 그 이후로는 사업을 하기 위해 이민을 오게 됩니다. 태국인들은 미국에서 주로 태국 음식점이나 식료품점, 주유소 등을 경영하고 있는데 현재 이 들 산업은 태국 이민자들의 대표적인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베트남 전쟁으로 태국의 이민자들이 급증했다니 무척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유학생에서 이민자들로 이주 형태가 바뀌면서 더 많이들 정착을 하게 됐겠죠?

답: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국의 이민역사가 고스란히 삶 속에 담겨있는 분을 만났는데요, 1960년대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 첫 발을 내딛은 제스다 시왈리씨를 소개합니다.

(남: 저는 1962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팬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에 유학을 왔습니다. 와튼 스쿨은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으로 이 곳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죠. 저는 학위를 받고 태국으로 돌아가 태국의 경제장관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 당시 태국은 군부정권이 장악을 했을 때라 경제 정책도 군인들이 관장했는데…그들은 경제 전문가들이 아니잖아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죠. 그렇게 태국의 경제 장관이 될 날만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제스다. 혹시 통역관이 될 의향이 없냐?’ 라고 물어보는데.. 전 사실 미국에 있을 생각도 없었고, 또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공부를 마치면 모국에 돌아가 국가에 공헌을 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에 머무를 수도 없었죠. 그래도 시험은 한번 쳐보자 라는 마음으로 응시를 했고, 시험을 친 바로 그날부터 통역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미 정부 산하에서 일하는 태국어 최고 통역관이 된 것이죠.)

문: 1960년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에 유학을 왔다니 대단한 수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답: 네, 제스다 씨는 현재 미국의 소리 방송 태국어 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국 경제장관을 꿈꾸던 청년이 미국 연방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기 까지.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데요, 제스다 씨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왜 통역관이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바로 베트남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남: 제가 통역관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는데 많은 태국인들이 미국을 도와 참전하게 되죠. 그런데 영어에 능통한 태국 군인이나 공무원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겁니다. 그래서 통역을 완벽하게 하고 또 통역하는 법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제가 그 역할을 하게 된거죠. 결국엔 미 국무부에 들어가 유학생 신분에서 미국 영주권자로 신분도 바뀌고, 고위 공무원들의 수행 통역관이 되게 됩니다. 태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미국을 소개하고 통역하는 일을 했는데요 1년 중에 9개월 넘게 집을 비웠어요. 태국에서 늘 손님이 왔거든요. 딱 3개월, 겨울에만 손님이 없었는데 미국 동부나 북부의 겨울은 너무 추우니까 더운 나라인 태국에서 아무도 안오더라구요. 아무튼 무척 바빴지만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미 전역을 여행할 수 있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그만뒀어요. 하루는 출장을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공항에 마중 나온 제 아들이 저를 피해 숨더라구요. 아들에게 아빠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이 얼마나 괴롭던지요… 하는 수 없이 통역관 일을 그만뒀습니다.)

문: 제스다씨, 이렇게 해서 통역관을 그만두고 미국의 소리 방송에 오게 된거군요?

답: 네 맞습니다. 유학생으로, 전쟁 통에 통역관으로, 그리고 미국연방정부 직원으로…미국에서 47년을 산 제스다씨의 삶 속에 태국 이민자의 역사가 투영돼 있는 듯 했는데요, 미국에서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또 자신의 후세대들도 미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하더라구요.

문: 태국 이민 역사와 이민 1세대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그럼 이렇게 자리를 잡은 1세대에 이어 2세대들, 젊은 세대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관해서도 들어봐야겠죠?

답: 태국 이민자들의 미국 이주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고 아직 미국 사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젊은 태국 이민자들 그리고 2 세대들은 큰 포부를 갖고 미국사회를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전해드리죠. 마지막으로 태국의 왕실 의전 음악 준비했습니다. Pleng Ok Thalay Thao 바다의 심장이라는 곡 전해드리면 전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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