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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4월 26일


1984년,

4월 26일 스윙재즈의 대부, 카운트 베이시가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나이 향년 79세였습니다.

본명이 윌리엄 베이시인 카운트 베이시는 1904년 뉴저지 레드 뱅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윌리엄 베이시가 어릴적부터 피아노를 가르쳤고 이후 뉴욕으로 이주해 십대를 보낸 카운트 베이시는 그곳에서 제임스 존스 같은 빈민촌 할렘가 피아니스트들의 영향을 깊게 받습니다.

재즈사에 있어서 카운트 베이시가 미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1936년 카운트 베이시가 창단한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는 1930년대와 40년대 스윙재즈 붐을 일으키며 큰 인기를 얻습니다.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는 특유의 간결한 피아노스타일과 앙상블을 강조한 연주로 최고 밴드의 명성을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자신의 밴드를 이끌면서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음악가, 카운트 베이시, 그는 간결하고 치밀한 사운드를 펼쳐내는 연주자로 후대에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4년 카운트 베이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오케스트라는 살아 남아 '베이시 사운드'를 계승하고 있으며 이 오케스트라는 17번의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현재 뉴욕 맨해튼 할렘가에는 그를 기리기 위한 카운트 베이시 극장이 있습니다.

1986년,

옛 소련이 자랑하던 신형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 4호 원자로가 폭발합니다.

현장에 있던 직원 2명이 그자리에서 숨지고 원자로 건물의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불을 끄러 나선 직원들의 대부분은 방사능에 노출돼 7월말까지 29명이 사망합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건은 그 후 수년간 발전소 해체 작업에 투입된 노동자 6천여명과, 이지역을 떠난 민간인 2천 5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최악의 원전 사고였습니다.

또 반경 30킬로미터 내 살던 40여 만 명이 고향을 잃었고 3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고농도 오염지대 500여 마을도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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