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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북 핵 6자회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중대 기로에 섰습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 외무성 성명을 그대로 이행할 경우 북한 비핵화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요. 6자회담이 그동안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왔는지 최원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최대 고비를 맞았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한 데 반발해 북한이 ‘6자회담에 절대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6자회담은 지난 2003년 이래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북한이 지금처럼 강력한 어조로 ‘6자회담 불참’ 의사를 선언한 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14일 영변에 머물던 미국의 핵 전문가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요원들에게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북한이 핵 불능화를 파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을 비롯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6자회담이 당장 열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6자회담이 아주 막을 내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북한은 좀더 유리한 고지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6자회담 거부 의사를 밝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의 미국북한인권위원회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김광진 씨도 북한의 이번 발표는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선물을 받아 내기 위한 ‘벼랑끝 전술’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흥정을 해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더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한 흥정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03년 8월 시작된 북 핵 6자회담은 지난 6년 간 순조롭게 진행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6자회담을 시작했지만 막상 회담이 시작돼서도 구체적인 핵 문제 해법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6자회담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당시 회담장에 나온 북한은 자국이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5개국에 포위돼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말했습니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양자회담을 선호한다면 6자회담에서 압박감을 느꼈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때문에 6자회담은 2005년까지 이렇다 할 핵 문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공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자회담의 최대 고비는 지난 2006년 10월의 북한 핵실험이었습니다.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 95, 2006년 10월9일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자 6자회담은 금방이라도 와해될 것만 같았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는 것이 6자회담의 목표였는데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실험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자 6자회담은 오히려 활기를 띄었습니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 부상은 양자 접촉을 통해 북한 비핵화의 청사진을 만든 데 이어 6자회담을 가동해 2.13합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뒤에도 핵 문제는 숱한 난관을 겪었지만 미국과 북한은 때로는 미-북 양자접촉, 때로는 6자회담을 가동해 어려움을 극복해 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북한이 6자회담을 완전 거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 일본 등이 6자회담 재개를 바라고 있는데다, 북한이 6자회담 의장국이자 최대 맹방인 중국의 뜻을 거슬리기 힘들 것이란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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