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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4월13일


1958년 4월 13일 오늘,

미국과 소련이 맞서던 냉전시기에 미국의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소련으로 달려가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합니다.

반 클라이번!

냉전시기에 피어난 23세의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열정과 패기를 지니고 당시 소련이 자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자랑하기 위해 주최한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대회에서 우승자가 됨으로써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당시 그의 연주에 매료된 심사위원들이 소련의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인에게 우승을 줘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상을 주었다는 일화는 그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었는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1919년 4월 13일 오늘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일제의 식민치하에 항거해서 온 겨레가 봉기한 3·1운동이 끝나고 한달 여 뒤인 4월 11일 민족 지도자 30여명은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임시 의정원을 구성하고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 한 후 4월 13일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포합니다.


임시 의정원 의장에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등이 각료로 임명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이승만은 통합 정부의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하지만 그 활동은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정부 운영 자금의 부족에다가 민족 지도자들의 독립운동 노선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결과, 임시 정부 조직은 자주 바뀌게 되었고 독립 운동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하이와 광둥, 류저우 등으로 몇 차례 거처를 옮기면서 27년간 광복운동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임시정부의 이승만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서둘러 귀국했고, 1948년 7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꾀한 3.15 부정선거와 이에 대한 국민의 폭발적인 분노로 4·19의거가 일어나 끝내 이승만은 하야하게 됩니다.

애국과 독재의 양면을 넘나드는 우남 이승만에 대한 공과 시비는 오늘날에도 매우 엇갈리고 있으며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결코 쉽지 않은 듯 보입니다.

'나는 항상 국민을 존경한다'라는 하야 성명을 남기고 하와이로 떠난 이승만은 1965년 하와이의 미 육군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합니다.

하와이의 트리폴리 미 육군병원에서 남긴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나를 고국에 데려가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1919년 오늘, 임시 정부가 수립 된지 4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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