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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4월 8일


1969년 4월 8일 오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과 회동합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후세인 국왕이 사흘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후세인 국왕은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과 미리 조율한 중동평화안에 대해서 닉슨 대통령과 협의합니다. 평화안에는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대신 이스라엘이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에서 점령한 지역에서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6일 전쟁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충돌에서 비롯됐습니다.

이스라엘이 1차 중동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 고원에 농작물을 경작한다고 선언했고. 이때부터 시리아와 골란 고원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된 것입니다. 시리아는 아랍의 맹주이자 현대적 군사력을 갖춘 이집트와 군사동맹을 맺습니다.

시리아의 지원요청을 받은 이집트의 나사르대통령도 요르단•이라크와 군사동맹을 체결해서 대 이스라엘전쟁 준비를 서두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포착한 이스라엘은 즉각 전시 체제에 돌입하고 거침없이 진격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수에즈 운하, 요르단의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역, 그리고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빼앗았습니다.
불과 6일만의 일이었습니다.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6일 즉시 정전을 결의하였고, 쌍방의 수락에 의해 6월 9일 정전이 실현되지만 중동은 언제 또다시 터질지모르는 화약고였습니다.


미국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중동지역의 강력한 친 서방 국가인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닉슨은 후세인이 들고 온 중동 평화안을 거부하고 맙니다.

1919년 4월 8일 오늘,

한반도에서 3•1 만세소리가 울려퍼진지 한달여만에, 한반도 북단, 평안북도, 현재의 자강도, 강계 장터에서 다시 한번 자주 독립을 외치는 큰 함성이 울려퍼졌습니다.

평양 신학교 학생 주하룡이 중심이 돼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장터에 있던 장꾼들도 합세했고, 사람들은 다 함께 조선독립을 부르짖으며 감격의 순간을 나눴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 군중들은 불어났고, 이들은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일본군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진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경찰서로 걸어가는 시위대들에게 일본 경찰이 무차별사격을 한 것입니다.

이들은 미리 매복해 있다가 시위군중이 도착할 때를 기다려 비인간적인 학살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이른바 강계 학살 사건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이날 일본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다섯 명이 목숨을 잃고, 30여명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 조선 독립을 향한 학생들의 순수한 의지가 꺾이는 순간이었습니다.

1919년 오늘 일본이 저지른 강계 학살은 3ㆍ1 운동이 한반도의 가장 외진 곳까지 퍼져나갔음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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