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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3월 28일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뜨리마일섬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소한 벨브 고장으로 뜨거운 핵발전소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가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원자로가 녹아내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기술자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냉각수는 계속 빠져나갔고, 원자로 안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고, 내부에서 생성된 수소가 폭발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뒤늦게 원인을 발견해서 처리한 덕에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원자로 건물뿐만 아니라 발전소 밖으로 핵물질이 빠져나가 일대는 방사능 물질로 오염되고 맙니다.

팬실배니아 주정부는 발전소 주변 학교를 폐쇄하고 어린이와 임산부를 대피시킵니다. 또 인근 주민에 대해서도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방사능 물질 유출은 사고후 5일동안이나 계속됐습니다.

이 사고로 사고 지점에서 반경 80km 내에 거주하던 주민 200만 명이 방사능 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핵발전소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대형사고인 뜨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는 세계에서 핵발전소 운전 경험이 가장 많은 미국 핵산업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습니다.

1969년

제 34대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1890년 텍사스 주에서 독일계 이민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젠하워는, 1915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합니다. 졸업성적은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군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 때 지휘한 것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습니다.

이때 아이젠하워는 '아이크'란 애칭으로 불리우면서, 국민의 신망과 애정을 얻습니다. 그리고 1952년 아이젠 하워는 오랜 민주당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20년 만에 공화당소속 대통령이 됩니다.

아이젠하워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그의 사망 소식에 한국민들도 애도를 표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한국전쟁 장기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전선을 직접 살펴보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선직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연임에 성공한 아이크는 1960년 다시 한국을 방문합니다. 1960년의 방문은 미국의 대통령 신분으로는 최초의 한국 방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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