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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3월 24일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21세기를 향한 전략 방위 구상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전략 방위 구상, SDI 로 명명된 이 계획은 대륙간탄도탄을 비롯해 미국을 표적으로 한 적국의 공격 물, 특별히 소련의 핵미사일을 비행 도중에 격추시키는 방법에 관한 연구계획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미사일이나 핵탄두 파괴가 현재나 가까운 장래의 기술로 가능한지의 여부를 약 10년에 걸쳐 연구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에 소련은 우주의 군사화를 초래한다면서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미국 주재 소련 대사였던 아나톨리 밥리닌의 말입니다.

소련이 레이건의 전략 방위 구상 계획으로 매우 화가 났으며,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방 세계나 미국 내 일부에서도 전략 방위 구상이 우주군비확장을 초래하는 이른바 STAR WARS, `별들의 전쟁계획'이라면서 거세게 비판 했습니다.

결국 전략방위구상은 구 소련을 비롯한 전 세계 열강들의 우주전 참여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하지만 1993년 소련이 붕괴되고 클린턴 행정부는 정부는 더 이상 전략 방위 구상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고 판단, 이 계획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전략 방위 구상은 십년간 총 300억 달러가 투입된 계획이었습니다.

1976년

전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인 이사벨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체포됐습니다.

젊은 시절 무용수로 활동하던 이사벨 페론은 지난 1960년 후안 도밍고 페론과 결혼했고, 이후 후안 페론은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 자신의 부인인 이사벨 페론을 부통령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후안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 그리고 이사벨 페론은 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1년 후, 후안 대통령이 사망하자, 이사벨 페론은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집권한지 21개월이 지난 1976년 오늘, 이사벨 페론은 군부 쿠테타로 권좌에서 쫓겨났고, 5년간 가택 연금됐습니다.

집권 기간 중 경제난과 장관들의 독직 사건으로 군부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아오다가 쫓겨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1964년

서울지역의 대학생 5천여 명이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중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수교 협상을 조만간 타결짓고 다음 달인 1964년 4월에 조인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대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한일회담 관계자들에 대한 화형식도 치러집니다. 학생들의 시위는 24일에 이어 25일도 계속됐고, 사흘째인 26일에는 전국적으로 확대돼 16개 도시에서 대학생 4만3천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26일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학생들의 우국충정은 이해하지만 시위는 더 이상 외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한일회담을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박대통령의 특별 담화로 중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가담하는등 분위기는 더욱 격해집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일본에 가 있던 김종필 공화당 의장의 귀국을 지시하게 되고. 급진전되던 한일회담은 소강상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듬해 시나이 일본외상이 한국을 방문, 한일기본조약에 가조인함으로써 결국 한일회담은 타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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