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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3월 19일


1994년 3월 19일 오늘,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제 8차 실무접촉회의가 판문점에서 열렸습니다. 양측은 이자리에서 최근의 남북관계, 국제 정세를 둘러싸고 가시 돋친 설전을 주고 받았습니다.

북한의 박영수 단장은 북한이 피해를 입으면 남한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이었습니다.

이 발언이 있은 후 이병태 국방 장관은 국회에서 전쟁이 나면 통일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1월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의식해서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아파치 헬기 등을 남한에 증강 배치해놓고 있었습니다.

국제 원자력 기구도 나흘 전에 북한 핵 물질이 핵무기로 전용되지 않았음을 검증할 수 없다면서 사찰단을 철수시켰습니다. 이에 한반도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속에 열린 8차 실무접촉은 결국 양측의 고함과 설전 속에 결렬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발언을 즉각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줄곧 표류하던 남북 적십자 회담도 완전 결렬됩니다. 불바다 발언자였던 박영수단장은 4년뒤인 1998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한 학술회의에서 불바다 발언에 대해 북한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서울도 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1993년 3월 19일 오늘,

북한출신의 비 전향 장기수 이인모씨가 34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해 전,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처음으로 이인모씨의 송환을 요구했고, 이에 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씨를 조건 없이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1917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난 이인모씨는 해방후 노동당에 입당했고, 한국 전쟁 때 북한군 종군 기자로 참전했습니다.

이인모씨는 전쟁 중 빨치산과 간첩활동을 하다가 1952년 지리산에서 체포 된 후 전향을 거부해서 34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비 전향 장기수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송환된 이씨는 북한에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북한 당국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영웅 칭호를 내리고, 최고훈장인 김일성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2007년 북한방송은 전 조선인민군 종군 기자이고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 씨가 남한 감옥에서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의 나이 89세였습니다.

그리고 2008년 북한은 평양 통일 거리에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 동지’라는 말과 함께 이인모의 반신 동상을 건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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