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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통신] 北 공작원 출신 김현희, 일본인 납북자 만나


지난 한 주 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주요 뉴스를 통해 한국사회의 흐름을 알아보는 강성주 기자의 서울통신입니다.

[질문 1]
지난 주 한국 발 뉴스 가운데는 북한 공작원 출신 김현희 씨가 부산에서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났다는 기사가 가장 관심을 끕니다. 오늘은 이에 관해 좀 자세하게 알아봤으면 합니다. 김현희 씨가 일본인 납북자 가족을 만난 것이 지난 11일 오전이었지요?

[답변 1]
그렇습니다. 김현희 씨는 지난 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벡스코 전시장에서 일본인 납북자인 ‘다구치 야에코’ 씨의 32살 된 장남과 70살 된 오빠 등 가족 2명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현희 씨는 자신이 공작원 교육을 받고 있을 때인 1987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 초대소에서 생활하며 ‘다구치 씨를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어디로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86년에 결혼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978년 다구치 씨를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구치 씨가 지난 1986년 교통사고로 숨졌으며, 유골은 집중호우 때문에 떠내려 갔다고 말해왔습니다.

[질문 2]
그러면 북한의 설명과 김현희 씨의 증언이 틀리지 않습니까?

[답변 2]
그렇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978년 당시 22살이던 다구치 야에코 씨를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나, 1986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현희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고 있던 1987년에도 다구치 씨는 이은혜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쳤으며, 앞에서 말한대로 86년에 결혼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북한 내 모처로 이동시킨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북한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현희 씨는 다구치 씨가 납치될 당시 한살이던 아들을 보고는 어머니를 닮아서 잘 생겼다면서, 다구치 씨는 그 당시 아들을 많이 보고 싶어했다고 말했습니다.

“다구치 씨가 제가 이렇게 가족을, 아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들을 만나는 걸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하고 또 이 자리에 다구치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현희 씨는 지난 1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구치 씨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일본에 있는 다구치 씨 가족이 이를 수용하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면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해 이뤄졌습니다.

김현희 씨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집필하고 강연 등을 하면서 생활해 왔으나, 지난 1997년 12월 결혼한 두부터는 12년 동안 일체 외부활동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질문 3]
김현희 씨는 다구치 씨 가족을 만난 데 이어,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습니까?

[답변 3]
그렇습니다. 김현희 씨는 지난 11일 두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는, 다구치 씨의 가족과 만남입니다. 이번 만남은 일본 언론들에게 아주 중요한 취재거리였습니다. 다구치 씨의 가족은 하루 전인 10일 일본에서 비행기편으로 김해 공항에 도착해서 김 씨와 만남을 갖고 돌아갈 때까지, 일본 언론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두번째는 김현희 씨가 다구치 씨의 가족과 만나고 난 뒤 가진 기자회견인데, 이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이 크게 주목했습니다.

김 씨는 잘 아시다시피 22년 전인 지난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 여객기를 폭파한 테러리스트입니다.

그 당시 함께 공작활동을 한 김승일은 바레인에서 수사를 받던 중 자살을 시도해 숨지고, 김현희 씨는 12월 15일 한국으로 압송돼,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극히 이례적으로 한달 뒤인 4월 12일 특별사면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김현희 씨는 그 뒤 1997년 12월 국가안전기획부 직원과 결혼을 한 뒤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김현희 씨가 12년 만에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하니까, 당연히 언론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김 씨는 지난 두 차례의 정부 즉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 씨는 또 현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일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 4]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말해 당시의 국가 정보기관이 김현희 씨에게 압력을 가해 대항항공 858편 여객기 폭파 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것이 아니고, 한국 정보기관의 자작극이라고 말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아닙니까?

[답변 4]
그렇습니다. 김현희 씨는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서, 당시의 한국 정부와 국가정보기관이 자신을 그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고, 심지어 이민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김현희 씨는 현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전담팀을 구성해 당시의 일들에 관해 조사하고 있고, 자신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서 대항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명백하게 북한이 저지른 테러이고, 자신은 가짜가 아닌 진짜 테러리스트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의 이 말은 지난 노무현 정부 때의 친북 좌파가 1987년의 대한항공 폭파 사건이 김정일의 지시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도록 협박했고 또 자신은 진짜 김현희가 아닌 가짜 김현희라고 자백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유가족분들이 북한이 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라고 아직까지 그런 의혹을 얘기하는데, 참 20년이나 지난 사건을 아직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KAL 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이고, 저는 더 이상 가짜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

[질문 5]
이번 다구치 씨 가족이 김현희 씨와 만나는 것을 계기로 한국 정부도 한국인 납북자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여론이 한국 내에서 강해졌다는 보도도 있던데요.

[답변 5]
그렇습니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납치자들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납치자들이 가족과 만나도록 해줘야 한다”고 한 김현희 씨의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50명에 이르는 납북자 문제의 진전 없이는 북 핵 6자회담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6.25전쟁 때의 전쟁포로로 생존해 있는 5백60여명, 그리고 납북 어부 등 납북자 4백80여명의 생사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정부는 사라진 국민을 데려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고, 실제로 지난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을 방문해 납북자 5명을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만, 한국 정부는 정부의 힘으로는 단 한 명의 납북자를 데려 오지 못했습닌다.

심지어는 납북자 한 사람이 어렵게 북한을 탈출해 재외공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어오자, 어떻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았냐고 짜증을 낸 공관원도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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