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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28일


1987년

한국에서 평화의 댐 건설이 시작됩니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 댐이 무너질 경우를 대비해서 짓는 것이었습니다.

넉 달 전, 한국 정부는 북한이 휴전선 인근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고 물을 원산 쪽으로 역류시켜서 발전시키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최대 저수량인 200억t이 방류될 경우 서울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발표합니다.

이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 한국민들은 북한의 댐 건설중단을 요구하는 각종 규탄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남한의 댐을 건설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이에 전 국민적인 모금운동으로 639억원이라는 성금이 걷힙니다.

하지만 평화의 댐은 1993년 문민정부 시절 감사원의 감사를 받게 됩니다. 감사결과, 평화의 댐은 정권안보차원에서 조급한 과잉대응으로 이루어진 시국 전환용이었던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결국 평화의 댐은 공사 개시 17년만인 2004년 4월에야 완공됩니다.

1979년

70년대 한국의 청년 문화를 이끌었던 영화감독 하길종이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9남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하길종은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후 형 밑에서 자란 하길종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UCLA 영화과에 입학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귀국 후, 영화 화분으로 데뷔, 이후 수절, 바보들의 행진, 한네의 승천등을 통해 사회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담아 당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70년대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좌절을 그린 영화, ' 바보들의 행진'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청년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인 고래사냥과 왜 불러는 80년대 중반까지 금지될 정도로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상영하는 영화마다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 잘려나갔고, 하길종의 영화는 어느 순간 특유의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별들의 고향 속편,병태와 영자등 하길종의 후기 작품들은 비판의식이 사라지고, 상업주의와 영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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