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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26일


1993년

110층짜리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폭발물이 터집니다. 이 폭발로 주차장과 연결된 지하철역의 천장이 무너졌고 열차를 기다리던 시민 수십 명이 갇혔습니다. 이 사고로 6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다쳤습니다.
또 건물 지하층 여러 곳에서 불과 연기가 퍼지면서 세계 무역 센터 지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조사 결과 폭발은 테러분자들의 소행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범인 6명은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뒤 2001년 9월 11일, 테러분자들에게 공중 납치된 민간항공기 2대가 세계 무역 센터 두개 건물로 각각 돌진한 것입니다.

이 테러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인 세계 무역센터는 완전 붕괴되고, 사망 또는 실종된 희생자만도 3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1948년

유엔 총회는 한반도에서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키로 결정합니다.

유엔은 1년 전 남북한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 실시를 결의했었습니다.
하지만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은 남한쪽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소련이 이를 거부해 선거를 치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총선이 어려워지자 미국과 남한 우익진영은 남한 단독총선을 추진했고 미국의 단독 총선 제안이 유엔총회에 회부됐던 것입니다.

유엔 총회는 공산권의 기권 속에 33대 2로 단독 총선 안을 가결했습니다.

이같은 결정이 발표되자 미 군정과 이승만 박사를 비롯한 우익진영은 크게 환영합니다. 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 등은 단독총선이 남북 분단을 고착시킬 것이라면서 총선 불참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싼 양진영의 반목과 대립은 심화됩니다.

결국 석 달 뒤인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첫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지고 제헌의회가 구성됩니다.

제헌의회 초대의장은 이승만이었습니다.

2003년

매월당 김시습과 우리 동네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62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941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이문구는 선친의 좌익 경력으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966년, 한국의 대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 '백결'로 등단합니다.

이문구 선생은 이 후 관촌 수필과 산 너머 남촌 등을 포함한 2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해왔습니다.

이문구 선생은 작품 활동 외에도 한국 소설가 협회 상임이사와 민족 문학 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문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회의 창립을 이끄는 등 문학의 사회참여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문구 선생은 한글 특유의 토속적인 방언과 해학적인 문체로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문구 선생은 한국문학작가상과 동인 문학상을 포함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1996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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