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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18일


1963년,

한국의 박정희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이 이른바 시국 선언을 발표합니다.

박정희 의장은 이날, 시국수습을 위한 9개 방안을 발표하면서 각 정당이 수락한다면 자신은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조건부 민정불참을 선언합니다.

두 해전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5.16세력은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는 이른바 '혁명공약'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집권을 위한 일련의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윤보선의 대통령직 하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 박정희는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집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의 틀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군 일부 세력은 혁명공약을 상기시키며 반발합니다.

이에 박정희는 1963년 오늘 결국 민정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굴복하고 만것입니다. 이러한 박정희의 발표에 대해 동아 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는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이 같은 조치를 지지한다고 발표합니다. 또한 미국무성에서는 박정희의 이번 발표가 애국적인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8일 만에 박정희는 선언을 번복하고 군정 4년연장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2003년,

한국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을 지나던 열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합니다.
정신 병력을 앓고 있는 50대 남자가 신병을 비관, 휘발유통에 불을 붙여 객차 바닥에 던진 것입니다.

이 사고로 12량의 지하철 객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습니다.

출근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지하철 안에는 많은 시민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직후 소방서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화재 진화를 위해 모든 소방력이 동원됐지만, 지하철 안이 너무 어둡고 유독 가스로 가득해 현장 접근이 어려워 구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참사로 192명이 사망하고 14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유족들은 망연자실 오열을 금치 못했습니다.

방화범은 자신의 장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죽기 싫어 일부러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자살 장소로 택했다고 말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방화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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