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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2월 15일


1997년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이 경기도 분당, 자신의 집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피살됩니다.

1982년 스위스에서 유학중 한국으로 귀순한 이한영은, 김정일의 첫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아들로, 북한 최고위층 로열 패밀리였습니다.

이씨는 귀순후 14년간 비공개 귀순자로 살지만 1996년 성혜림씨 자매가 서방으로 망명한 후 신분을 공개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합니다. 또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라는 수기집도 발간하는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 이날 밤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것입니다.

경찰의 수사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 해 11월 한국 국가 안전기획부는 이한영씨 피살 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고 밝힙니다. 고 이한영씨의 부인은 국가가 남편에 대한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습니다.

이한영씨의 죽음이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의 귀순과 관련, 북한의 보복, 위협 테러라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그리고 2004년, 한국 서울 중앙 지법은 이한영 씨의 죽음에 대해 국가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을 내립니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이 완전 철수합니다.

이로써 한때 10만여 명에 이르던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은 모두 떠나고 1979년에 시작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내전 개입은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내 이슬람 세력이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이에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 반군의 게릴라전이 성공을 거두자,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전쟁을 위한 예산을 세 배 이상 늘리고 무기를 공급하는 등 무자헤딘을 지원했습니다.

결국 소련군은 1988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1989년 오늘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 반군과의 교전으로 만7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피해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만 여명이 전쟁을 피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련군 철수로 친소정권이 약화되면서, 회교반군 무자헤딘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고, 아프가니스탄은 또다시 내전 속으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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