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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 논의 3년 ‘김-힐 라인’ 우여곡절

  • 최원기

북한 핵문제가 미국의 차기 행정부로 넘어감에 따라 지난 3년간 핵문제를 조율해 온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간의 운명적인 만남도 막을 내릴 전망입니다. 언론들이 김 부상과 힐 차관보 두 사람의 머릿 글자를 따서 만든 만든 '김-힐 라인'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그 동안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왔는지 최원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지난해 1월 16일, 독일 베를린 프레이저 플라자 2번지에 있는 독일주재 미국대사관. 이날 대사관 회의실에서는 미국과 북한간에 비밀 외교 접촉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언론을 따돌린 가운데 미 국무부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북한 핵문제 타개 방안을 논의한 것입니다.

큰 키에 소탈한 성격의 힐 차관보와 작은 키에 다부진 인상의 김계관 부상이 이날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힐 차관보와 김 부상간의 이날 만남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북한 핵문제의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당시 미-북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석달 전에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해 대북 제재라는 칼을 빼든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힐 차관보는 외교적 관례를 깨고 베를린에서 김 부상과 단 둘이 만나 주고받기식 핵 문제 해법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합의는 한달 뒤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나온 2.13합의의 모체가 됐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간의 회동은 그 후 북핵 외교의 중요한 외교적 틀이 됩니다. 핵문제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 먼저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이 만나 사전에 협상을 벌인후 6자회담을 열어 그 내용을 추인하는 것입니다.

또 두 사람은 핵신고와 검증 등 북한 핵문제의 고비길마다 베이징과 싱가포르 등에서 단둘이 만나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북한 비핵화 2단계의 최대 걸림돌은 '핵 신고'였습니다. 당초 북한은 지난 해 12월31일까지 핵 신고를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테러 지원국 해제 같은 정치적 보상은 하지 않은 채 핵 신고만 하라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을 해명하는 것도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북한은 지난 해 연말로 합의됐던 핵 신고 시한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핵신고를 둘러싼 미-북간 교착상태가 넉달간 계속되자 힐 차관보와 김부상이 다시 해결사로 나섰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8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해법을 도출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핵 신고 문제와 대북 정치적 보상 문제를 하나로 묶어서 처리하자는데 합의했습니다.

우려했던 핵신고 문제가 일단락되자 북한의 김계관 부상은 힐 차관보에게 '인심'을 쓰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월12일 미국에 1만9천쪽에 이르는 영변 원자로 가동 일지를 넘겨준데 이어 6월27일에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습니다. 또 미국도 이에 화답해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6월 26일 북한을 '45일 뒤에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신고를 함에 따라 45일안에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간 해빙 분위기는 채 두 달이 못가고 깨지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약속한 45일이 지났지만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하지 않았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핵검증 의정서가 마련되지 않으면 대북 테러 지원국 해제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이 당초 약속과 달리 테러 지원국 해제를 하지 않자 북한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단시킨데 이어 핵시설 원상복구에 나섰습니다.

핵검증 문제를 놓고 미-북 관계가 다시 꼬이자 다시 힐 차관보가 나섰습니다. 힐 차관보는 지난 10월1일 평양에 들어가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얼굴을 맞댔습니다. 두 사람은 사흘간의 논의 끝에 문제의 핵심인 핵검증과 관련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은 핵검증을 허용하고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 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미국과 북한은 핵검증과 관련 '과학적 절차'에 합의했으며 북한은 이 절차가 시료 채취를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려운 국면에 처했던 북한 핵문제가 힐 차관보와 김 부상간의 대화로 다시 한번 고비를 벗어나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뒤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핵검증의 핵심인 '시료 채취' 문제를 놓고 서로 딴 소리를 한 것입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힐 차관보는 지난 10월11일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 해제했습니다. 미국이 20년만에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북한이 다른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은 11월 12일 외무성 담화를 통해 핵검증은 현장 방문과 과학자 면담에 한정된다며 '시료 채취'는 합의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시료 채취를 놓고 핵검증 문제가 다시 미궁에 빠지자 힐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은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미국 대사관에서 이틀간 만났지만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곧 출범하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염두에 두고 핵검증을 미뤘을 공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다시 얼굴을 맞댔습니다. 두 사람은 나흘간 논의를 계속했지만 핵검증이라는 높은 벽은 결국 넘지 못하고 회의는 막을 내렸습니다. 베이징을 떠나면서 김계관 부상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베이징 6자회담을 끝으로 지난 3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온 미국의 힐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부상간의 이른바 '김-힐 라인'도 사실상 중단되게 됐습니다. 김 부상은 내년에도 핵문제를 맡은 공산이 크지만 힐 차관보는 국무부를 떠나거나 다른 임무를 맡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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