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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미-북 민간교류


2008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일주일 후면 어느덧 새해가 됩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지난 주부터 올해 북한 관련 뉴스들을 정리하는 특집기획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덟 차례로 나눠 보내드리는 특집기획, 일곱 번째 순서로 미국과 북한 간 민간교류와 관련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유미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지난 2월 북한의 수도 평양의 하늘 아래,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 퍼졌습니다.

58년 전 한국전쟁 이래 북한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미국 국가가 연주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미국 국가에 이어 음악의 거장 조지 거슈인의 명작, '파리의 미국인'이 연주됐습니다.

60년 동안 미국과 북한 두 나라 사이에 첩첩이 쌓여온 불신과 적대감이 음악의 선율에 녹아 내리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평양의 동평양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숨을 죽였고, 곧이어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전세계 언론들은 뉴욕 필의 공연을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를 가져왔던 1971년의 이른바 '핑퐁 외교'에 비교했습니다.

지난 2월 당시 북 핵 협상은 북한의 핵 신고 지연으로 교착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문화성의 초청과 미 국무부의 도움으로 이뤄진 뉴욕 필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은, 모든 정치적 갈등의 이면에 내재해 있는 상호 반목과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하나의 약속과 같았습니다.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은 단순한 민간 문화교류의 차원을 넘어 정부가 지원하는 '트랙 투 외교 (Track 2 Diplomacy)'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지난 2003년부터 미-북 간 트랙 투 외교에 적극 간여해 온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의 그리어 프리쳇트 동북아 프로젝트 부소장의 말입니다.

프리쳇트 부소장은 트랙 투 외교는 공식 외교협상에 따르는 제한을 보완하는 특수한 대화의 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정부 간 외교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일종의 안전공간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도출하고, 대화의 길을 열어 상호 신뢰 구축과 관계 증진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월 북한 측의 초청으로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관람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트랙 투 외교를 '담요를 짜는'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완전히 적대 관계였던 두 나라가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데는 여러 개의 실이 들어간다며, 트랙 투 외교는 그 패턴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하는 실과 같은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의 트랙 투 외교는 지난 2002년 제2차 북 핵 위기로 미-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2007년 10월 6자회담 이후 다시 활발해졌다고 말합니다.

전미외교정책협의회, NCAFP (National Committee on American Foreign Policy) 주최로 지난 달 뉴욕에서 열린 회의 역시 대표적인 트랙 투 외교의 하나입니다. 그리어 프리쳇트 부소장은 당시 회의의 주 목적이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북 관계를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리쳇트 부소장은 당시 회의에서 미국은 북한 측에 '비핵화의 진정한 마무리와 지속적인 이행 연기' 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놓여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6자회담의 북한 측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바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측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 그리고 미국 외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참석했습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대학 '세계분쟁협력연구소( Institute on Global Conflict and Cooperation (IGCC)'의 제안으로 지난 1993년 시작된 동북아협력대화, NEACD( Northeast Asia Cooperation Dialogue)도 지난 달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안보 협의를 가졌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수전 셔크 세계분쟁협력연구소 국장은 트랙 투 외교는 다른 나라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어 대화의 통로가 작은 북한에게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으로 2009년에는 트랙 투 외교를 포함한 미-북 간 민간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북한 지도자와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등, 미-북 간 직접대화와 6자회담 등을 함께 병행하는 '대화 중심의 포괄적 외교'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랙 투 외교 등 민간교류가 미-북 간 핵 문제 등 현안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기대는 섣부르다고 지적합니다.

북 핵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최근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힐 차관보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가 주최한 오찬연설 후 미-북 간 민간교류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교류가 많을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된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는 이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선의의 제스처에서 나오는 교류와 초청을 미국 정부의 유약함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를 체제 내부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힐 차관보는 또 북한은 대화의 창구가 존재하고, 문화 등 민간교류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을 구실로 핵 문제 해결 등에 진지한 자세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 필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의 감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부에서는 검증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진 현재의 북 핵 협상을 지적하며, 민간교류로 미-북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뉴욕 필의 공연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미국 방문 소식은 당장은 측정될 수 없는 민간교류의 잔잔한 힘을 일깨워줍니다.

북한 교향악단의 미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에반스 리비어 회장은 정치 상황과 재정 문제 등으로 인해 당장 성사될 수는 없지만, 미국 정부 내의 조용한 지지가 앞으로도 계속돼 북한 교향악단의 방문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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