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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맞은 푸에블로 호 승무원 송환


북한은 40년 전 23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 승무원들을 감금한 지 11개월 만에 석방했습니다. 푸에블로 호는 지난 1968년 원산 앞바다에서 정보수집 활동 중 북한 해군 함정과 미그 전투기들에 의해 나포됐고, 북한은 현재 이 함정을 대미 투쟁의 상징으로 대동강 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 기자가 최근 푸에블로 호를 둘러본 뒤 생존해 있는 푸에블로 호 승무원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윤국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1968년 푸에블로 호 나포 당시 랠프 맥클린톡 씨는 24살의 통신병이었습니다. 북한은 당시 푸에블로 호를 나포하면서 이 함정이 자국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맥클린톡 씨는 북한 당국에 의해 함께 체포된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11개월 간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북한에 감금돼 있는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생활이 매일 계속됐다는 것입니다. 맥클린톡 씨는 석방 하루 전에야 자신들이 석방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석방 열흘 전 동안은 구타를 당하는 등 정말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간 중 승무원들은 자술서를 쓰도록 강요당했고, 자술서 작성을 거부하면 더 많은 구타를 당했다고 맥클린톡 씨는 말했습니다.

마침내 12월23일,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합의가 이뤄져 승무원들은 비무장지대를 가로 질러 남한으로 송환됐습니다.

하지만 승무원들의 문제가 그 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푸에블로 호 사건>이란 책의 저자인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미첼 러너 교수는 승무원들이 사실상 해군으로부터 축출됐다고 말합니다.

러너 교수는 승무원들이 영웅 대접을 받은 게 아니라 함정을 포기하고, 고문에 굴복해 북한이 요구하는 허위 진술서에 서명한 군인들로 취급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승무원들이 푸에블로 호와 함께 침몰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환했다고 해서 대우를 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고 러너 교수는 말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승무원들에 대해서는 군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해군장관이 개입해 이를 막았습니다.

푸에블로 호는 승무원들이 석방된 이후에도 송환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는 1998년 말부터 평양 외곽의 대동강에 이 함정을 전시해 북한 군의 용맹함을 찬양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안내원이 방문자들을 갑판으로 안내해서는 붉은 동그라미를 친 수 백 여개의 총탄 구멍을 보여줍니다. 이 여성 안내원은 또 나포 당시 사망한 유일한 승무원인 듀안 하지스 씨가 쓰러진 지점을 자랑스레 설명합니다.

북한 측이 보여주는 비디오에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북한 아나운서의 설명이 영어로 나옵니다.

김정일 장군은 미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승무원들을 송환할 것이라고 말했고, 아울러 푸에블로 호는 전리품이기 때문에 돌려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맥클린톡 씨는 워싱턴 당국이 푸에블로 호를 북한의 선전물이 되도록 만들었다며, 푸에블로 호가 폭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맥클린톡 씨는 푸에블로 호는 당시 폭파됐어야 했는데 아무런 보복 없이 포기됐다며, 미국 정부가 이 함정을 1천5백 마일이나 북한에 의해 끌려가도록 한 것은 승무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푸에블로 호를 북한으로부터 넘겨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맥클린톡 씨는 만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 자신이 함정 인도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맥클린톡 씨는 자신은 푸에블로 호가 송환돼 동지나해로 예인될 때 인도를 맡은 해군 선박에 탑승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맥클린톡 씨는 아마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 5년 간 북한의 핵 계획을 폐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푸에블로 호 문제를 포함한 미-북 간 다른 현안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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