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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워터게이트’ 사건 제보자 마크 펠트 사망


미국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도 김정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문) 김정우 기자, 리차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론에 제보했던 마크 펠트 씨가 최근에 사망했죠?

(답) 네, 미국 연방정보국, 즉 FBI의 부국장을 지냈고,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론에 알렸던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이 지나 주에 향년 95살로 사망했습니다.

(문)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당시 미국을 뒤흔들었던,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답) 네,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당시 닉슨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백악관 측이 전직 중앙정보국, CIA 요원을 동원해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대책본부를 도청한 것이 발각돼서 닉슨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야 했던 사건입니다.

(문) 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데에는 신문기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답) 네, 당시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초기에 도둑이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에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 침입한 단순 절도 사건으로 처리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요? 바로 어떤 사람이 이 사건에 백악관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언론에 제보한 것입니다. 이런 제보를 받은 사람은 바로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신참내기 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였죠? 이 우드워드 기자는 이런 충격적인 내용의 제보를 가지고 칼 번스타인이란 기자와 함께 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서 많은 기사를 씁니다. 그런데 신문 기사, 즉 백악관이 야당 선거대책본부를 도청했고, 이에는 닉슨 대통령이 관련돼 있다는 내용의 기사 때문에 미국이 난리가 난 것이고요, 결국엔 닉슨 전 대통령이 쫓겨나기 전에 급하게 스스로 백악관을 떠난 겁니다.

(문) 그렇다면 이번에 사망한 펠트 씨가 그 제보자란 말이죠?

(답) 그렇습니다. 이 마크 펠트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드릴까요? 마크 펠트 씨는 1913년 아이다호 주 트윈 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이다호 대학과 조지 워싱턴 대학을 졸업한 후에 1942년에 FBI에 들어갑니다. 그후에 펠트 씨는 FBI에서 승진을 거듭해서 1971년엔 국장 다음 자린인 부국장 자리에 오릅니다. 이 FBI에서 두번째로 높은 자리에 오른거죠? 하지만 FBI에서 부국장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하던 이 펠트 전 부국장, '워터게이트' 사건을 언론에 흘리게 된거죠.

(문) 그동안 이 제보자가 과연 누구냐를 두고 30여년을 말들이 많았습니다만, 2005년까지 이 제보자, 즉 마크 펠트 씨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죠?

(답) 네, 그동안 '워싱턴 포스트' 신문은 이 제보자가 누군지는 제보자가 사망한 다음에 밝히겠다고 말해 왔습니다. 실지로 이 신문사 안에서 제보자가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단 3명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당시 기사를 쓴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 그리고 이들의 상관인 벤저민 브래들리 편집국장인데요, 이들은 지난 2005년 마크 펠트 씨가 스스로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임을 밝히기 전 까지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주인이었죠? 지난 1991년 사망한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 조차도 이 제보자의 신분이 누군지 모르고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레이엄 발행인은 자서전에서 이 제보자가 누군지 정말 알고 싶어서 밥 우드워드 기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 우드워드 기자가 대답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문) 이런 면을 보면 미국언론, 참 대단하죠? 30년을 펠트 씨의 신분을 누출하지 않았으니까요?

(답) 네, 미국 사회는 이런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나는 사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또 언론 제보자를 끝까지 보호하는 사회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위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 미국사회의 좋은 점 중에 하나겠죠? 이 기사를 보도했던 기자도 끝까지 펠트 씨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요, 신문의 소유주도 약속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궁금증을 참아낸거죠? 참 대단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동안 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를 영어로 '딥 드로트'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딥 드로트'라고 하면 한국 말로 번역하면 '목구멍 깊숙히'라는 말 정도가 되는데요, 한 조직의 비리를 그 조직 안에서 외부에 고발한 사람, 즉 '내부고발자'를 말할 때 이 '딥 드로트'란 말을 쓴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딥 드로트'란 말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르노 영화, 즉 노골적인 성행위를 보여주는 한 영화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미국사람들, 참 재밌는 사람들이죠?

(문) 그렇군요, 그런데 김정우 기자, 펠트 씨 같이 FBI 부국장까지 오른 사람이면 FBI 안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인데, 마크 펠트 씨가 현직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내용을 언론에 제보한 이유는 뭔가요?

(답) 펠트 씨는 지난 2005년에 잡지인 배네티 페어와 회견을 하면서 자신이 제보자임을 밝혔는데요, 이 회견에서 그는 자신이 1972년 당시 왜 제보를 했고, 또 왜 현재 자신이 제보자임을 밝히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워드에게 알린 게 나다라는 말만을 한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추측하기엔, 펠트 씨는 1971년 FBI 부국장으로 승진했고요, 이듬해인 1972년에 에드가 후버 국장이 사망하면서, 자신이 국장 자리에 오르지 않겠냐고 기대를 했는데, 이게 무산이 되면서, 여기에 펠트 씨가 화가 나서 언론에 사건을 유출시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당시 닉슨 정부는 연방수사국의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연방수사국과 아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펠트 부국장이 이 FBI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외부로 흘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주장들 추측에 불과할 뿐, 펠트 씨는 이에 대한 비밀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거죠?

(문) 지난 2005년가지 비밀이 잘 지켜져 왔는데, 정작 펠트 씨 본인이 자신의 신분을 알린 이유는 뭔가요?

(답) 사실 이 제보자가 과연 누구냐를 두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지 30년 동안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언론과 사건 관련자들이 여러 사람을 제보자로 꼽았는데, 이 마크 펠트 씨도 제보자 후보군에 들어간 사람 중에 하납니다. 그런데 펠트 씨는 지난 1999년까지 자신이 제보자란 주장을 거부했죠? 그런데 사망하기 약 3년 전인 2005년에 갑자기 자신이 제보자란 것을 밝히고 나왔죠? 항간에서는 자신이 제보자인 것을 밝히고 책을 써서 돈을 벌려고 한느 것이 아닌가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당시 펠트 씨의 나이가 92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은 없죠? 아마도 펠트 씨는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지면서, 죽기 전에 이 '역사의 수수께끼'를 스스로 밝히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이 제보자인 것을 알리지 않았나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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