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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당황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전격 해제한 데 대해 일본에서는 아직도 충격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정부의 방침을 막판까지 알지 못했던 일본의 아소 다로 총리 내각은 정치적인 타격도 크게 입었다고 하는데요, 도쿄 현지를 연결해 자세한 소식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이 일본의 아소 다로 내각에 큰 타격이 되고 있다구요?

그렇습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로 아소 다로 정권이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선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북한에 대한 가장 큰 압박수단을 잃어버린데다가, 그같은 중대한 조치가 일본 정부에는 발표 직전에야 전달됐다는 점에서 아소 내각의 외교에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입니다.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통보한 것은 공식 발표 4시간 전이었는데요, 한국 정부에는 그 같은 방침이 하루 전에 전달된 것과 비교해 보면 '일본 외교의 수모'라는 게 일본 언론들의 평가입니다. 실제로 당시 토머스 쉬퍼 주일대사는 일본 외무성 간부에게 지난 11일 밤 8시에 전화를 걸어서 미국 정부의 방침을 전달하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아소 총리와 통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당시 아소 총리는 도쿄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하마마쓰(浜松)시를 방문해서 청년회의소 간부 출신들과 술자리를 겸한 간담회를 갖고 있었는데요, 수행원 중에는 외무성 출신도, 통역도 없었습니다. 결국 조정 끝에 아소 총리는 밤 11시30분에 간담회장 옆 별실에서 부시 대통령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는데요. 이 때 휴대폰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현장의 비서관이 두 정상 간의 대화를 통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가 바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 30분 전이었습니다.

진행자: 그 때문에 일본 정치권에선 미국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일본 정치권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한 미국의 뒤늦은 통보를 놓고, 한마디로 '미국에 배신 당했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실제로 지난 주말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이던 나카가와 쇼이치 재무상은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동맹국인 일본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한 것이냐"면서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이시하라 노부테루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당돌한 일"이라면서 "경제적으로 혼란스런 틈을 타서 한 것 아니냐"고 미국을 비판했습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도 어제 국회 답변에서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에 대해 "우리는 불만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왔다"면서 불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서는 "검증이 확실하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서 6자회담 틀 속에서의 검증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것에 대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들도 상당히 반발하고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됐다는 소식에 분노와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납북 일본인 가족모임 대표들은 "모든 일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공허감과 무력감을 감출 수 없다"면서 "납북자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카드를 잃은 만큼 일본 정부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본인 납치 피해의 상징처럼 돼 있는 요코다 메구미(橫田惠)씨의 아버지인 요코다 시게루(橫田滋)씨는 "테러지원국 해제와 납치는 따로 봐야 한다"면서 "북-일 교섭을 통해 해결을 강구하면서 진전이 없을 경우엔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미국과 북한 간 핵 검증 합의에 따라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재개할 예정인데요, 일본 정부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구요?

그렇습니다. 아소 다로 총리는 어제 국회 답변에서 "우리는 이전부터 일본인 납치 문제를 포함한 북-일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계획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으며, 그러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일본이 대북 경제 지원에 동참하기를 바라지만, "납치 문제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 지원에 응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특히 지난 13일로 기한이 만료됐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6개월 연장하는 것을 결정했는데, 이 때문에 북한으로부터의 모든 품목 수입 금지, 모든 선박의 입항 금지, 조총련계 간부들의 재입국 금지 등을 담은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조치는 다음 해 4월까지 연장 적용됩니다.

진행자: 일본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환영하면서 에너지 지원을 재개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만 뒷전에 설 경우 6자회담에서 일본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일본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 것입니다. 일본은 그동안 일본인 납치자 문제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북 핵 문제 해결이 핵심인 6자회담에서 상당히 어려운 처지였던 게 사실입니다. 국내정치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납치자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게 일본 정부의 처지인데요, 그렇다고 북 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납치자 문제 해결만을 고집할 수도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림으로써 일본 정부로선 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는데요, 때문에 일본 정부는 북한과 일대일 교섭을 통해서 독자적으로 납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일본과 북한이 당장은 갈등 관계이지만, 북한과 일본간 외교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양측이 물밑에서라도 서서히 접촉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게 일본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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