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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까지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지난 1988년 1월부터 2008년 10월 이를 해제하기까지, 부침을 거듭해 왔던 지난 20년에 걸친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를 자세히 정리해 봅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87년 북한 간첩 김현희가 연루된 대한항공 여객기 공중 폭파 사건이 발생한 뒤 1988년 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미-북 관계 냉각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전환을 시작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심각한 안보 불안을 갖게 됐습니다. 북한의 제안으로 1988년 12월부터 1991년까지 미-북 간 비공식 참사관급 대화가 중국 베이징에서 18차례 열렸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이른바 '1차 핵 위기'가 불거졌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옛 소련에서 원자력 기술을 전수 받아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등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자체 핵 개발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1992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IAEA 에 제출한 핵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1993년 3월, 북한이 핵 비확산 조약, NPT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 1차 북 핵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위기 상황은 진정되고,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알려진 기본합의서가 채택됐습니다. 그 결과 11월, 북한은 핵 활동 동결을 선언하고, 다음 해인 1995년 12월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간 경수로 공급 협정이 체결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기본합의서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미-북 관계는 다시 냉각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금창리에 지하 핵 시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미국은 실효성 있는 대북 정책을 모색했고,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은 '페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북한 붕괴론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습니다. 미국과 북한 양국은 2000년, '미-북 공동코뮤니케'를 통해 적대관계 해소를 천명했습니다.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등 양국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당시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핵 무기를 사용해 공격할 수 있는 나라에 북한을 포함시켰습니다. 미국 정부는 몇개월 뒤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개발 의혹을 추궁했습니다. 2002년 10월17일,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 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제2차 북 핵 위기가 초래된 것입니다. 미국은 1차 핵 위기 때 북한과 타결한 기본합의서를 폐기했습니다. 2003년, 북한은 다시 NPT를 탈퇴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섰습니다.

중재국들이 나서면서 첫 북 핵 6자회담이 2003년 8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양 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석 달 뒤 영변 5 MW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개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은 그 해 9월,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된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2005년9월19일, 제4차 6자회담에서 비핵화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타결됐지만 이후 6자회담은 13개월간 중단됐습니다. 이 기간동안, 북한은 2006년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 실험을 강행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제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부시 행정부가 정책을 선회하면서 미-북 간 대화국면이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북 핵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미-북 관계 개선과 평화협정 체결 용의 등을 밝혔습니다.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등이 타결됐습니다. 지난 해 11월, 미국 정부의 핵 불능화 팀이 방북해 불능화 조치에 착수했고, 12월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갖고 방북했습니다.

양국 간 핵 신고 방법과 내용에 대한 협의가 계속되던 중 지난 4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힐 차관보는 핵 신고서 내용에 잠정 합의를 이뤘습니다. 이후 북한은 지난 6월26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60쪽 분량의 핵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곧 이어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45일 내에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계획을 의회에 통보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발표에 이어 북한이 영변 핵 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6자회담 개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7월10일, 열 달 만에 6자회담은 재개됐습니다.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 검증 문제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의회 통보 후 45일 째인 8월11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지 않았고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연기됐습니다. 그 후 8월26일, 북한은 핵 신고서를 제출하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한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핵 시설 불능화를 이미 중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은 이어 9월19일, 영변 핵 시설 불능화 조치의 원상 복구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성명: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의 효력 발생을 무기한 연기한 데 대응해 핵 시설 무력화 작업을 중단했으며, 얼마 전부터 영변 핵 시설들을 원상복구하고 있다.

그간 어렵게 이어져왔던 미국과 북한간 북 핵 협상이 원점으로 되돌아 가려는 때,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지난 1일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협상안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이 협상안이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뒤인 10월11일, 미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면서 북한은 마침내 20년9개월 만에 테러지원국의 굴레에서 완전 벗어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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