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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메리칸 드림] 이민 생활 9년차 네 번째 식당 차려 - ‘골든 스킬릿’ 경영자 임재호 씨


꿈을 쫓는 이민자들의 얘기, 'My American Dream (마이 어메리칸 드림)' 시간입니다. 나이 쉰이면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보다는 안정을 꾀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남들은 슬슬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낯선 나라 미국에 와서 새 삶을 개척하고 있는 한인이 있습니다. 메릴랜드주에서 '골든 스킬릿 (Golden Skillet)'이란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임재호 씨인데요. 이민 생활 9년 만에 식당을 세 곳으로 늘리고, 곧 네 번째 식당을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나의 아메리칸 드림', 오늘은 나이를 잊고 끊임 없이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임재호 씨의 삶의 발자취, 부지영 기자가 들려 드립니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의 디스트릭트 하이츠, 바쁘게 자동차들이 오가는 말보로가 선상에 노란색 지붕을 한 작은 건물이 서 있다. 붉은색으로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상호는 '골든 스킬릿', 한인 임재호 씨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임재호 씨는 9년전인1999년에 이 곳 디스트릭트 하이츠의 '골든 스킬릿' 지점을 인수했다. '황금 냄비'란 뜻의 '골든 스킬릿'은 1964년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시작한 닭튀김 전문 패스트푸드 식당... 맥도널드, 웬디스 등과 같이 주문하면 바로 음식이 나오는 즉석 음식 식당이다. '골든 스킬릿'은 한 때 미국내 2백여개 지점을 둘 정도로 인기였지만 창업자가 사망한 뒤 다른 회사로 넘어가면서 지금은 식당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맛으로 따지자면 다른 식당에 뒤지지 않는다고 임재호 씨는 말한다.

"브랜드가 떨어져서 그렇지 KFC나 다른 프랜차이즈 보다 맛으로는 경쟁할 만한 퀄리티가 있다고 이렇게생각하고 있어요."

마침 점심 시간을 맞아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임재호 씨의 말에 동의한다.

"전 튀긴 음식을 멀리 하는 편이지만 닭튀김이 먹고 싶으면 여기로 온답니다."

"여기서 파는 닭고기를 참 좋아하는데요. 집에서 만든 닭튀김 맛이 나거든요."

한국에서 임재호 씨는 소위 잘 나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젊어서부터 뛰어든 음반 사업으로 꽤 돈을 벌었고, 부동산에 투자해 재미를 보기도 했다. 빚 보증을 잘못 서 집을 여러 채 날리긴 했지만 어떤 시련에도 금방 일어서는 오뚜기였는데… 뒤늦게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한국 사회의 일부 부조리에 염증을 느낄 무렵, 미국 이민 허가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4년 전 먼저 미국에 간 동생을 통해 가족 이민을 신청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마침 차례가 됐다는 거였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사회 생활하고 겉 다르고 속 다른 그런 분위기 때문에 굉장히 갈등을 많이 느껴서 여기는 베이식하게 기독교 문화가 깔려 있으니까 좀 그런 부분이 덜하지 않겠는가, 그런 거 때문에 왔습니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임재호 씨는 처제 가족이 있는 워싱턴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미처 시차 적응도 하기 전부터 처제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나가 일하기 시작했고, 내 사업을 하기 위해 틈 나는 대로 부지런히 적당한 사업체를 물색하러 다녔다.

"가장 쉬운 것이 뭐냐 어떤 장로님한테 물었는데 프라이드 치킨이 가장 쉽다. 그냥 가루 묻혀서 튀기면 된다… 그래서 그 말씀 듣고 프라이드 치킨 가게만 찾으러 다녔는데…"

하지만 적당한 가격과 조건을 갖춘 사업체를 찾기란 생각 보다 쉽지 않았다. 10달 동안 60 군데가 넘는 가게를 봤지만 여러가지 조건이 맞지 않았고, 슬슬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떨어져 가면서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가게를 구할 수가 없는 거에요. 가게를 구할 수 없으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지만 퓨쳐가 안 되니까 아주 당혹스럽고.. 제일 어려운 게 외로운 거에요. 이야기 할 사람이 없는 거.. 식구들 한테도 내 좀 어려움을 토해 놓으면 좋은데.. 내가 그렇게 어렵게 얘기 하면 얘들도 자신감을 잃는다, 내 얼굴 표정이 바로 걔들 자신감, 걔들 미래란 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생활을 한 1년 하면서 도저히 뭐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일찍 가는 게 좋겠다, 여기 가면 세븐 브리지 있잖아요. 한번 차 몰고 들어가려고 그랬어요."

매일밤 간절히 빌었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제일 처음에 보고 마음에 들어했던 가게 쪽에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임재호 씨] "이 가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갔었어요. 넘어 갔었는데 제가 가게를 구하고 있는 중에 브로커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 가게를 다시 살 의사가 없느냐.. 의사는 있는데 그동안에 돈을 또 까먹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도저히 살 형편이 안 된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자금 마련에 성공한 임재호 씨는 메릴랜드주 디스트릭트 하이츠의 '골든 스킬릿' 지점을 인수하게 돼고, 1999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가게 운영에 나서게 된다. 미국에 온 지 거의 1년 만의 일이었다.

임재호 씨는 한국에서 소매점을 운영한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 아래 열심히 일했다고 말한다.

"먹는 장사는 간단하잖아요. 커스터머의 눈을 만족시켜야 하고, 테이스트, 입을 만족시켜야 하고, 그 다음에 마음을 만족시켜야 한다 말이죠. 제 경우에는 입 만족시키는 것은 프랜차이즈에서 해결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남아있는 것이 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건데, 그건 비록 우리가 미국 문화에 낯설고, 언어가 원활하지 못하더라도 할 수가 있는 거에요."

임재호 씨는 손님을 왕처럼 대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받고 싶은 만큼의 친절은 베푼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관심 가져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나쁜 사람 누가 있어요? 백인인지, 흑인인지… 여기는 공짜 문화가 없는데요. 아침에 일찍 온 손님이라든가 저녁 늦게 온 손님한테 프리도 주고, 한국의 좋은 거, 거래의 덤 문화, 이런 것도 좀 섞어주고, 가장 좋은 선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거 잖아요."

고객 만족이 바로 광고란 전략이 들어맞아 임재호 씨가 운영하는 '골든 스킬릿'은 독자들이 추천한 식당으로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지역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 역시 서비스가 훌륭하다고 입을 모은다.

//고객들//

"서비스가 굉장히 좋아요. 음식도 빨리 나오구요."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시고.. 예를 들어서 뭘 한 개 더 준다든가.. 약간 디스카운트 해주신다든가.."

임재호 씨는 그동안 볼티모어와 워싱턴 디씨 인근에 두번째, 세번째 가게를 낸 데 이어, 올해말 디씨 시내에 네번째 가게를 내기 위해 준비중이다.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온 식구가 합심해 일한 덕택이라고 임재호 씨는 말한다."그 때는 식구들 일하는 거는 하나도 돈을 안 줬기 때문에…."

당시 군대를 마치고 스물두살 나이에 미국에 들어왔던 둘째 아들 임경서 씨는 단지 가족이 우선이란 생각 아래 열심히 일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보수라고 하는데 가족끼리 페이 받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거 빼고는 그렇게 힘든 거는 그다지 없었고, 가족이 일단 먼저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잘 돼서 더 좋구요."

임재호 씨는 세 자녀가 장성한 나이에 미국에 와서 나름대로 갈등이 많았을 거라고 말하는데..

"다 대학교 다니다 왔으니까 저보다도 그 친구들이 더 갈등이 많았죠.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할 시기인데 와가지고 나름 대로 어려움이 많았을 거고.. 제가 또 비지니스를 오래 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걸 그냥 넘어가지 못해요. 제가 완벽주의자는 아닌 데 꼭 짚고 넘어가는 체질 때문에 애들도 열 많이 받았을 거에요."

둘째 아들 임경서 씨는 이제 와서 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한다.

"이민 생활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저희 가족 뿐만이 아니라, 저나 저희 형이나 누나 같은 경우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서로 좀 힘드니까 좀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아버님이 좀 그러셨던 것도 있는데 지금 와서는 이해가 돼요. 아버님 혼자 잘 살자고 그런 것도 아니고.. 지금 와서 보니까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임재호 씨의 딸과 큰 아들은 이미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고, 막내 아들 임경서 씨도 제 짝을 만나 올 1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이민 온 후 계속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한번도 한국에 나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막내 아들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돼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됐다고 임재호 씨는 말한다.

"후회 한 적이 없고 제가 61살인데 미국에 온 일 빼놓고 잘한 게 별로 없어요. 지나서 생각해 보면.. 미국에 온 건 내가 판단을 참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고.. 앞으로 이 부분은 하늘 나라 갈 때까지 후회는 안 할 거 같아요."

누구든지 용기를 갖고 시작을 하면 성공을 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란 것이다. 성공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일단 마음 먹은 사업을 잘 끌고나갈 수 있는 환경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

[임재호 씨] "인간이 어떻게 절대적인 만족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거고.. 프라이드 치킨이 외국 음식이란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어느 흑인 가족이 50이 넘어서 한국에 가가지고, 전혀 한국 문화나 음식 문화를 모르는데 어떤 케이스가 돼서 해장국집을 한다, 육개장집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때 과연 나처럼 할 수 있었겠느냐.. 상대적으로 그렇게 비교를 해 보면 그만큼 좋은 나라고.."

미국에 와서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물질이 영혼을 달래주진 못하는 법, 아직도 문득 외로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가수가 됐을 거라고 말하는 임재호 씨, 가끔 외로움이 밀려들 때면 홀로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새로 연 식당들은 두 아들이 관리하고 있고, 요즘은 새로 낼 식당 자리를 물색하고 준비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임재호 씨, 하지만 새 식당을 내는 일 외에도 꼭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제가 가칭 가스펠 하우스라고 그래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예배 문화와 생활 문화를 함께 고민하고 또 지도하고 그럴 수 있는 가스펠 하우스를 빨리 할 예정에 있습니다. 엘리컷 시티 주변에 6 에이커나 7 에이커 되는 농장을 하나 사가지고 제가 해야 되고.. 좀 더 남음이 있다면 장학기금도 가스펠 하우스를 통해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후배들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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