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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권수립 60년] 북한의 대외관계

  • 최원기

정권 수립 60년을 맞은 북한의 현실은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고립, 국내적으로는 먹는 것 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식량난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보내드리는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특집보도, 오늘은 북한이 지난 60년 간 어떻게 대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북한 외교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봅니다. 최원기 기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인 1948년 9월 9일, 북조선인민위원회의 김일성 위원장은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대내외에 선포했습니다. 북한 현대사에 밝은 한국 국민대학교의 정창현 교수는 당시 김일성은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열린 인민위원회 대회에서 북한의 초대 내각 수상으로 추대됐다고 말합니다.

북한보다 며칠 앞서, 1948년 8월 15일에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과 그 이듬해 건국된 중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올림픽을 치른, 번영하는 나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라고 미국 동부에 있는 플레처 외교법학대학원의 제임스 쇼프 교수는 지적합니다.

쇼프 교수는 북한이 전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외부 사정에 어두운 폐쇄적인 나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동북아시아에서 고립된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냉전시절인 지난 1960년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 외교'를 벌였습니다.

특히 북한은 지난 1961년 7월 중국과 상호원조조약을 맺은 데 이어 소련과도 상호원조조약을 맺었습니다. 북한이 체결한 이 조약에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중국이나 소련이 즉각 북한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 조약은 북한에 커다란 안보적 자산이 됐습니다.

북한은 또 '60-70년대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석유와 식량을 싼 값에 들여올 수 있었고, 그 결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를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 시기에 김일성 주석은 중국과 소련 뿐만 아니라 비동맹 국가들과 중남미의 사회주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 등과 만나 친교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입니다. 유럽의 분단국이었던 동서독이 1989년 통일됐고, 이어 2년 뒤인 '91년에는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 제국이 붕괴됐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소련과 맺은 상호원조조약도 사문화 됐습니다. 40년 이상 북한을 지켜주던 든든한 버팀목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입니다.

중국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은 1992년 남한과 국교를 맺었고, 이후 양국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졌습니다. 외교 전문가인 제임스 쇼프 교수는 이 때가 북한 외교 최악의 시기였다고 말합니다.

"쇼프 교수는 소련 붕괴에 이어 중국이 한국과 손을 잡은 것은 북한 지도부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94년 7월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데 이어 대홍수에 따른 식량난으로 주민 수십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이 사상 최악의 내우외환을 맞은 것입니다.

소련의 붕괴를 목격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우선 북한은 1차 핵 위기를 계기로 지난 1994년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했습니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10월, 2인자인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에 보낸 데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초청했습니다.

당시 미-북 공동선언이 발표되는 등 양측의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유력하게 거론됐던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임기 말을 맞은 클린턴 대통령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미국에 대북 강경파인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북 관계는 다시 이전의 대치상태로 돌아가고, 북한의 대외적 고립은 더욱 깊어집니다.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평양에게 외교적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유엔은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채택하고 북한에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며, 미-북 간 국교도 수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김정일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2.13 합의와 10.3 합의를 채택했습니다. 이어 영변 핵 시설 불능화에 이어 늦게나마 핵 신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비핵화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달 26일 영변의 핵 불능화 작업을 중단한 데 이어 핵 시설 원상복구에 나섰습니다. 평양의 이같은 움직임과 관련해 과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을 지낸 조지타운대학의 마이클 그린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마이클 그린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살 길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외국의 침략이 아니라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입니다. 따라서 북한과 김정일 정권이 앞으로 살아 남으려면 베트남을 본받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워싱턴의 민간 연구소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란드 박사는 말합니다.

"북한은 베트남을 본받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놀랜드 박사는 말했습니다."

조지타운대학의 마이클 그린 교수도 북한이 살아남으려면 부시 대통령 임기와 관계 없이 검증과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린 교수는 북한이 검증 문제에 협력할 경우 백악관은 북한을 즉각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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