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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 홍 할머니 방북- 47년만에 남편 재회


북한 유학생과 결혼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47년 간 남편과 생이별했던 독일인 레나테 홍 할머니가 지난 달 북한을 방문해 남편 홍옥근 씨를 만났습니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홍 씨와의 사이에 난 두 아들과 함께 평생을 기다려온 남편과의 12일 간의 재회를 마치고 이달 초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한국 '중앙일보'의 보도와 '중앙 방송 Q 채널'이 방영한 '레나테 홍 할머니의 재회-반갑습니다'의 주요 내용을 재편집한 프로그램을 인용, 재구성해 홍 할머니의 방북기를 전해드립니다. 보도에 서지현 기자입니다.

레나테 홍: (독일어) "오늘 내 꿈이 실현되는 날이에요. 마침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있겠어요."

레나테 홍 할머니의 오랜 꿈이 이뤄졌습니다.

지난 7월25일, 독일 외무부와 국제적십자사의 오랜 노력 끝에 레나테 홍 할머니는 남편 홍옥근이 나고 자란 땅을 처음으로 밟았습니다. 그리고, 47년만의 만남. 풋풋한 청년이었던 남편은 백발이 성성한 쇠약한 노인이 되어있습니다.

레나테 홍: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한국어)

정말로, 반가웠을 것입니다. 누가, 이보다 더 진심으로 '반갑다'는 애틋한 한국어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47년만에 만난 남편인데요.

1960년 결혼했지만 남편은 이듬해 당국의 강제 소환으로 북한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1963년 2월26일 도착한 편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너무도 반가웠지만, 시간의 공백은 그 반가움을 약간은 누그러뜨릴만큼 컸나 봅니다.

레나테 홍: (독일어) "그 순간, 우리가 47년 동안 떨어져 지냈다는 게 실감났고, 솔직히 말해 어색함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어요."

방북 사흘 째인 7월27일, 71번째 생일을 맞은 홍 할머니는 남편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생일 축하해"

스물다섯번째 생일도, 서른번째 생일도, 마흔번째, 예순번째 생일도, 일흔번째 생일도, 혼자였는데... 이제 일흔한번째 생일이 되어서야 남편은 말했습니다.

"생일 축하해"라고.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7년의 시간, 반 세기 가까이 흘러 레나테 홍 할머니는 71 살, 홍옥근 씨 역시 74 살로, 이제는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레나테 홍 할머니의 두 아들에게도 이번 방문은 47년 간 끊어졌던 부자 관계를 잇는, 평생의 잇지 못할 선물이었습니다.

둘째아들 우베가 말합니다. 큰 선물을 받았다고.

우베 홍:(독일어) "아버지는 선물을 준비 못하셨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선물을 바라지도 않았어요. 우리의 여행 목적은 그 게 아니었으니까요. 우리는 아버지 자신이 우리에게 제일 큰 선물이라고 말했어요."

맏아들 페터 현철은 남들보다 도톰한 자신의 손가락 마디 모양이 아버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의 인생에서도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습니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북한에서 재혼해 낳은 딸 광희 씨와 함께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 여행을 다녔습니다. 서해갑문과 해수욕장, 묘향산과 보현사, 용문대 동굴, 평양산원, 대성산 유원지 등 아버지의 나라를 구석구석 돌았습니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묘향산의 여관에서 남편과 한 방에서 묵었습니다. 정확히 47년만이었습니다. 그 47년의 시간을 만회하기엔 12일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이제 독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레나테 홍: (독일어) "시간을 부여잡고 싶었어요. 그 사람도 함께 보낸 시간이 아름다운 꿈 같다고 말했어요. 헤어질 땐 제가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우리의 만남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머릿 속에 깊이 새기라구요. 누구도 그 기억을 앗아갈 수 없다구요. 남편도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누구도, 이제 그 기억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레나테 홍 할머니가 1년 반의 짧은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으로 지난 47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기억의 힘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12일 간의 이 기억으로 레나테 홍 할머니 인생의 남은 시간이 흘러갈 것입니다.

하지만 레나테 홍 할머니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인 남편과 헤어졌던 또 다른 독일과 루마니아의 여성들, 또 북한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 여러 아들, 딸들이 옛 동유럽과 러시아에 아직 여럿 남아있습니다.

'기억'의 힘만으로 지난 반 세기를 견뎌온 파란 눈의 이들 이산가족들은 이데올로기의 힘이 사그라든 2008년에도 피붙이를 다시 만날 소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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