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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 호 승무원 "소송 제기했지만 무슨 의미가..."


미국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 호'가 지난 1968년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지 올해로 40년째를 맞았습니다. 미국의 첩보 활동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알려진 푸에블로 호 승무원들은 당시 11개월 간의 감금 기간 중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며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현재 미국에서 궐석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다음 달 열리는 40주기 기념식에 앞서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 도널드 리처드 페퍼드 회장의 소회를 들어봤습니다. 서지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푸에블로 호 사건 발생 후 40년. 북한 정부를 상대로 당시 승무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궐석재판이 미국에서 진행되면서, 푸에블로 호 사건이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40년 가까이 침묵해 온 푸에블로 호 승무원들이 뜻을 모은 것은 지난 2006년. 그 해 열린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 회의에서 윌리암 토마스 매시 씨 등이 소송을 제의했습니다. 자신들의, 또 가족들의 아물지 않는 가슴 속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시 씨를 비롯한 4명은 법원이 북한 측의 참가 없이 재판을 진행하겠다며 이른바 '궐석재판'을 선언한 뒤, 지난 6월 1인당 2천4백35만 달러 씩 총 9천7백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습니다.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 도널드 리처드 페퍼드 회장은 전체 승무원 82명 가운데 단 4명만 소송에 참가한 것은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실제로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리더라도, 실제로 북한 당국이 자신들에게 배상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페퍼드 씨가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만약 승소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승리한 것이지만, 의미 없는 승리라고 페퍼드 씨는 말했습니다. 이미 흘러버린 40년의 세월을, 북한도, 미국 정부도, 그 어느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 30살의 미 해군 일등병이었던 페퍼드 씨는 이제 71 살, 백 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지난 1968년 1월23일,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를 놓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 나죠. 아직도 간간히 떠오릅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당시 푸에블로 호에 승선했던 83명 가운데 사건 당시 사망한 1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12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40년이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40년 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습니다.

페퍼드 씨는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신체적 외상 뿐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당시 18살, 19살이었던 어린 승무원들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극심했고, 승무원 가운데 상당수가 1968년 12월 미국으로 돌아온 뒤 바로 군을 떠났습니다.

그 때문인지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는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뒤인 지난 1988년에야 결성됐습니다. 첫 모임 때는 30명, 격년 열리는 모임에도 평균 40명 정도만 참석하고 있습니다. 절반 가량의 승무원들은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페퍼드 씨는 전했습니다.

다음 달 12일 미국 버먼트 주 벌링턴에서 열리는 40주기 기념식에도 모든 승무원들이 함께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반백의 노인이 된 이들은 기념식과 함께 당시 사건을 극화한 연극을 함께 관람할 계획입니다. 연극은 다음 달 19일부터 10월11일까지 미국 메릴랜드주 스프링필드의 '헤리티지 극장'에서 무대에 오릅니다.

자신들의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처음 무대에 오른 지난 1970년에도, 또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된 1977년에도, 승무원들과 가족들은 예술작품이 된 자신들의 경험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페퍼드 씨는 전했습니다. 40년이 흘렀지만,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페퍼드 씨는 지금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여전히 북한에 남아있는 '푸에블로 호' 선박이 미국으로 반환되는 것입니다.

페퍼드 씨는 자신이 죽기 전에 푸에블로 호가 북한으로부터 반환됐으면 좋겠다며, 승무원 모두가 아마 자신과 같이 느끼고,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원산항에 정박 중이던 푸에블로 호를 지난 1999년 평양의 대동강 변으로 옮겨와 대미 항전의 상징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40년 전, 자신과 동료들을 극심하게 고문했던, 그들의 나머지 인생의 진로를 송두리째 빼앗았던 북한 당국에 대해, 페퍼드 씨는 '증오'의 감정은 이제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페퍼드 씨는 대신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며, 미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페퍼드 씨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페퍼드 씨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승무원들을 고문했던 북한 당국자들도 몇 명은 죽었을지 모르겠다며, 세월이 많이 흘렀고, 모두 다 함께 나이를 먹어 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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