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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1950년대 '김수임' 사건 새롭게 조명


미국의 'AP 통신'이 최근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으로 불렸던 김수임 간첩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해방정국을 흔들어 놓았던 이른바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서지현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우선 김수임 간첩 사건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답: 네. 세간에 알려진 '김수임 사건'은 이렇습니다. 1911년 생으로 이화여전을 졸업한 신여성 김수임 씨가 해방 직후 미 군정시절 미군 헌병대장 존 베어드 대령과 함께 살면서, 경성제대 출신 독일 유학파 공산주의자 애인인 이강국을 위해 미군 철수계획을 비롯한 중요 기밀을 북한으로 넘기고, 또 이강국을 월북시켰다는 것입니다. 김수임은 이와 관련해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며칠 전에 처형됐습니다.

당시 미 육군은 김수임의 사형 후 3개월 여에 걸쳐 미국에서 베어드 대령을 조사했는데요, 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김수임의 간첩 행위와 베어드 대령과의 관련성에 대해 미군은 대부분 '증거불충분'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어드 대령은 당시 기밀정보 접근 권한이 없었다며, 김수임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서는 지난 1996년 베어드 대령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기밀해제했습니다.

또 1956년 작성된 미 정보기관의 보고서에는 이강국이 미 중앙정보국, CIA 소속인 것으로 기재돼 있는데요. 지난 2001년 당시 한국 국사편찬위원회 소속이었던 정병준 박사와 재미사학자 방선주 씨가 이 내용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AP 통신'이 지난 16일 보도한 김수임 사건 조작 가능성은 지난 2005년 2월, 한국방송, KBS가 방영한 '인물현대사-한국판 마타하리, 신화인가, 진실인가-김수임' 편에서도 자세히 다뤄진 바 있습니다.

진행자: 그동안 김수임 사건의 조작 의혹이 제기돼 왔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반공 이데올로기가 팽배했던 당시 민간인 신분의 이강국과 김수임의 간첩 행위에 대해 군사재판이 진행됐고, 간첩 행위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했지만 김수임 씨는 사형이라는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김수임과 베어드 대령 사이에서 태어난 김원일 씨는 지난 2005년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들어보시죠.

김원일(KBS 인터뷰):한국에서는 한 여자를 사형 선고까지 내릴 만큼 어머어마하게 다루고, 재판 과정에서 베어드 대령에 대한 자백이 그 정도까지 나왔고, 그렇게 깊이 연루돼 있다고 기록에 나오는데, 본인(베어드 대령)은 한국을 그렇게 쉽게 자유로운 몸으로 떠났다... 아무리 미군과 미국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조처라고 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또 극심한 고문으로 김수임이 거짓 자백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돼왔습니다. 베어드 대령에 대한 미군의 조사보고서는 '김수임으로부터 강압적으로 자백을 받았는지 증거는 없지만 목격자 증언으로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군은 이어 '김수임의 자발 증언이다 하더라도 죽음을 늦추기 위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백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 보고서에 적시해 놓았습니다. 당시 수사관들은 김수임에게 여성으로서 치욕스런 고문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당시 한국의 언론들은 '미모의 여간첩', '사랑 때문에 조국을 팔았다', '애정유죄' 등으로 김수임의 간첩 행위를 사실로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답: 지난 2005년, '내가 김수임 간첩 행위를 조작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당시 김수임 사건을 극화해 방송했던 '특별수사본부' 방송작가였던 오재호 씨의 `KBS' 인터뷰 내용, 들어보시죠.

오재호 전 방송작가(KBS 인터뷰): 매 회 써서 매 회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40매 써서 넘기면 빨간 줄이 절반 그어져 나와요. 그럼 다시 써서 방송하는 그런 시절이었거든요. 사실 첫 출발은 제가 조작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회를 넘길 수가 없어요. 김수임을 간첩으로 만들어야 되니까.

진행자: 남과 북이 갈린지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은 '반공'이란 말이 참 어색하게 들리는데요. 이 증언을 들어보니 당시 서슬 퍼렇던 한국 내 반공 정서가 다시 떠오르네요.

답: 그 서슬 퍼렇던 시절 이후에도 김수임 사건이 연극과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은 연애, 사랑 얘기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남과 북이 갈라진 역사의 아픔과 두 사람의 불운한 인생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입니다. 김수임의 애인인 이강국 역시 1946년 월북한 뒤 남로당 숙청 사건에 연루됐고, 김수임에 빠져 미 군정의 간첩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955년 북한에서 총살 당했습니다.

진행자: 김수임 씨의 최후 변론 내용이 3년 전 처음 공개된 것으로 아는데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답: 당시 김수임 재판에 법무사로 배석했던 김태청 씨는 김수임이 마지막 재판에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김태청 당시 군법무사(KBS 인터뷰): (김수임의 최후 진술은) 내가 날 위해서 힘써준 분들이 여럿 있고, 애인도 있고. 나를 위해 힘 써준 사람을 위해 나로서는 너무 너무 그 때로서는 당연한 일을 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한테 죽기 전에 감사 말씀을 드리고 간다고...

김원일 씨는 자신의 생모 김수임이 '여간첩'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 처음 안 뒤, 20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30여 년 간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원일 씨의 KBS 인터뷰 마지막 발언을 소개해드립니다. 김수임 사건의 진실을 지금 그 누구도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분단 60년이 넘은 현재, 어떤 시각으로 이 사건을 봐야할 지 정확히 드러내주는 말 같습니다.

김원일 (KBS 인터뷰): 어머니라고 하는 영혼을 격랑의 세월에 태어나 격동 속에 살다 가신, 한 영혼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셨던 한 영혼으로... 힘 있는 자들이 그렇게 처리해 버려서 그렇게 급류 속에 익사해 간 사람들이 어디 저희 어머니 뿐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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