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특별기획: 북-중 국경의 두 얼굴 IV] 중국에 팔려간 북한 여성들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중국으로 팔려갔습니다. 일부 인권 단체들은 인신매매 조직을 통해 중국인과 강제로 결혼한 북한 여성들이 호구(신분증)도 없이 불안 속에 반 노예처럼 살고 있다며 이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도 굿굿이 뿌리를 내리고 가정을 꾸려 주위로부터 인정 받고 사는 여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현지 취재를 통해 보내드리는 특집방송, 오늘은 네번째 순서로 중국 내 북한 여성과 자녀들의 삶을 조명해 봅니다.

중국 동북지역 내륙의 한 두메 산골. 선양에서 기차로 10시간을 간 뒤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시골 비포장길을 2시간 이상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첩첩산중의 마을입니다.

이 작은 한족 마을에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북한 여성 오영숙 씨가 3년째 살고 있습니다.

중국 가면 돈 많은 남자가 날 살 것이다. 그래서 나를 호구에 올려서 (조선의) 내 아이를 데려오자. 이렇게 생각했죠."

2005년 3월, 오 씨는 9살 난 아들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인신매매 브로커 여성을 따라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가 빚만 잔뜩 지고 생존까지 위협 받자 마지막 수단으로 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돈 많은 남성이 자기를 사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꿈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돈 없는 사람이나 병신이나 아내를 못 얻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을 사가는 겁니다."

중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어떤 권한도 없었던 오 씨. 결국 50대 초반의 시골 농사꾼인 현 한족 남편에게 팔려 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한족 남성 목소리…]

이 곳은 3년 전 공안에 체포돼 강제북송된 또 다른 북한 여성 심복순 씨의 집입니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지붕, 흙벽에 위태롭게 얽혀 있는 전깃줄들, 구멍 난 천정, 비닐로 덕지덕지 붙인 창문. 취재팀은 비가 내리면 금방이라도 샐 것 같은 네 평 크기의 이 집을 마굿간으로 착각했습니다. 이 지역의 기독교 지도자 신성철 씨 입니다.

" 이거 보세요. 꼭 토끼가 앉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겨울에 서리가 내려…."

북송된 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복순 씨 집에는 한족 남편과 그의 모친, 그리고 5살된 딸 해님이가 살고 있고 있습니다.

중국어: "과자 먹을래?…."

집에 남겨진 심 씨의 딸 해님은 인사는 커녕 과자 등 선물을 줘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엄마의 온기가 떠난 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눈에 초점을 잃은 채 그저 바닥만 바라봅니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만난 기독교 단체와 인도주의 기구 관계자들은 중국 내 탈북자 수를3만~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다수는 이렇게 인신매매 등을 통해 시골로 팔려간 북한 여성들이라고 이들은 말합니다.

송이복 "자나 깨나 고저 마음 편안히 편안히 어이구..

박순희: 남편도 마음 편안하게 못살아요.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자식들은 엄마를 따르는데. 엄마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까.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중국 마을에서 국적 없이 가난한 한족 남성과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10년 전 중국으로 팔려와 세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북한 여성 박전금 씹니다.

"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 남자(남편)도 우리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오래 살아도 아직까지 파악도 못하고."

일부 여성들은 남편을 잘못 만나 폭력과 노동착취를 당하며 노예처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 뒤 현재 모 지역에 머물고 있는 이영화 씨 입니다.

"사람이 질이 많이 안 좋습니다. 시골에서 배운 것이 없고 무식하고 그러니까. 의사소통도 안되고. 아 죽는 게 낫지 않나. 이렇게 살기 보다는..

하지만 중국에 이 씨처럼 매를 맞으며 노예처럼 살고 있는 북한 여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1: "모임날이 기다려지고. 못 나오면 속상하구."]

여성2: " 이 날이 자연히 기다려지는 겁니다."

지도자: "얘끼! 손님 오셨으니까…좋은 소리만 골라하네…

[북한 여인들의 웃음소리 까르르…..]

여러 마을에 사는 북한 여성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자신들을 격려하며 지원해 주는 한 중국인 기독교 지도자의 집에 모여 이렇게 수다를 풀고 나면 속이 시원해진다는 이들.

친정집 같구. 우리가 무슨 형제가 있습니까? 부모가 있습니까? 여기 들어와서. 부모형제 없으니까. 여기 오면 나이도 각각 층층이 다르니까 서로 집안식구처럼 얘기하구 격려하구 지내죠"

중국 동북 지역의 많은 북한 여성들로부터 대모로 불리는 기독교 인도주의 지원가 손명순 씨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뿌리를 내리며 사는 북한 여성들이 동북 지역에 많다고 말합니다.

"1997년 1998년도에 나온 탈북자 여성들이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착실히 사는 여성들이 참 많이 있어요. 이 분들은 가정에서 시어머니나 친척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남편에게도 인정을 받고 살죠."

주위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북한 여성들은 글을 빨리 깨우쳐 남편의 농사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남편은 말을 하고 부인을 글을 좀 알아서 두 사람이 이걸 협력해요. 이를테면 농사 짓는데 비료가 몇 % 다 뭐 농약에 물을 얼마나 탄다..이 걸 두 사람이 협력해서 남편한테 신임을 얻어요. 또 자식을 낳아서 잘 키우니까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잘 사는 이런 부류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사람들은 뿌리를 내리면서 잘 정착해요."

"옥합이예요 그래! 딸: 옥합이예요.…"

길림성에서 만난 청진 출신의 이주희 씨는 손 씨가 말하는 북한 여성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한족 남편 사이에 예쁜 딸까지 두고 있는 주희 씨는 7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현재 동네에서 가장 좋은 최신식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 시어머니집에 잠깐 가세요. 가셔서 쉬다 가세요."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느라 맞이할 곳이 없다며 시어머니집에 가자는 주희 씨. 그는 동네사람들도 인정하는 맹렬 여성이었습니다. 손명순 씨는 최근 이렇게 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여성들을 무조건 인신매매 희생자로 여겨 탈출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는 가정을 계속 파괴시키는 짓이라고 말합니다.

"무조건 잘 사는 사람들까지도 뒤흔들어 놓아서 마음을 들뜨게 해서 떠나게 한다면 이 것은 사회적으로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악인 거예요."

손 씨는 남편을 잘못 만나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구하는 일은 필요하겠지만 외부세계의 눈으로 북한 여성들의 삶을 무작정 판단하고 돕는 일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뿌리를 내리고 착실히 사는 북한 여성들이 늘어나자 중국 당국도 일부 호의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방문한 4개 시골 지역 모두 2~3년 전부터 주민의 신고가 없는 한 탈북자 체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마을 촌장과 공안들도 보호 대가로 받던 촌지를 더 이상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길림성의 일부 지역은 당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북한 여성들을 조사해 갔으며, 여러 지역에서는 나이가 어린 자녀들에게 조건 없이 호구를 주고 있다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요즘은 정부 당국이 조치를 완화해서 신고만 하면 경비나 공안이나 관리들에게 교제비를 내주지 않아도 해주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손명순: "아이들이 호구가 없어서 굉장히 어려움을 당했는데 한 2년 전부터는 아이들에게 돈 받지 않고 국가 정부가 호구를 내주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엄마곰 아빠곰 아기곰….아이들의 노래소리]

이 곳은 한 국제기독교 선교 단체가 운영하는 길림성의 한 고아원. 아파트를 전세 얻어 비밀리에 운영하는 이 고아원에는 엄마가 도망갔거나 북송된 북한 여성의 자녀 6명이 보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광일: 산수 잘합니다.

기자: 광일이 여기와서 좋습니까?

광일: (웃으며) 네! 좋습니다.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한 이 어린이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선교사 고성산 씨는 말합니다.

"성격이 뭐인지 잘못된 것 같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나이가 7살인데도 대답도 할 줄 모르고 아는 체도 못하고 묻는 말에 대꾸를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곳에 와서 사랑을 받으며 모두 달라진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며 시골에서 만난 심복순 씨의 딸 해님이가 생각났습니다.

아이들 노래: "사철에 봄 바람 불어오니…..

사랑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한국에서 이 중국의 먼 시골까지 들어와 북한 여인들을 격려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명순 씨는 이들에게 아직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처와 불안, 끝없는 도피의식, 도덕적 상실감 등은 인내를 갖고 끝까지 격려해 주며 자긍심을 심어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어떤 사업이든지 농업이든지 뭐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액대출 같은 것을 줌으로써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자립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물질적으로만 하는 것은 이들을 버리는 것 같습니다."

탈북 여성들의 노래: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있지요.

배고픔과 가난을 탈출해 강을 넘어온 북한의 여인들. 인민폐 몇 천원에 중국의 지방 시골로 팔려 왔지만 그 차가운 광야에서 많은 여인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희망의 싹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