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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재 영화 ‘말살’, 아카데미 단편영화 후보에 올라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미국의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 후보에 올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영화제목은 영어로 `디페이스', 뭔가를 지워 없앤다는 뜻인데요, 한국 제목은 '말살'로 돼 있습니다. 헐리우드의 신참 감독인 존 알로토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또 관객들은 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파란 눈의 미국인 영화감독이 북한의 실상을 다룬 영화 '말살'이 올해 아카데미상 단편 영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영어로 'DEFACE'-한국말로 '말살'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북한의 한 주민이 북한사회 곳곳에 붙어있는 벽보-포스터를 지운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수영은 북한의 한 공장에 소속된 노동자입니다. 그는 당의 지시에 잘 따르고 총화시간에도 빠지지 않는 착실한 노동자입니다.

착실했던 노동자였던 수영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의 딸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북한은 노동자와 그 자녀에게 하루 6백 그램의 식량을 배급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식량이 다 떨어졌는데도 당은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배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수영은 식량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 했으나 끝내 식량을 구하지 못했고, 그의 딸은 영양실조로 숨지고 맙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차디찬 땅에 묻은 수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북한 당국의 벽보였습니다. 북한의 공장, 기업소는 물론이고 모든 장소에 붙어 있는 그 벽보에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2명의 어린이를 배경으로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벽보를 본 수영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지난 수 십년 간 노동당의 거짓선전에 속아 왔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날 밤 수영은 광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얼굴이 그려진 커다란 벽보가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벽보를 보고 있던 수영은 벽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갑니다. 수영이 벽보 위에 쓴 것은 '인민은 배고파서 다 죽어가고 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착실했던 노동자가 마침내 당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존 알로토 감독은 자신의 생각에도 숨이 막힐 것 같은 북한의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의 선전선동에 세뇌된 채 입도 뻥끗 못하는 북한주민들의 현실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알로토 감독은 언론과 정치적 자유가 전혀 없는 북한의 현실을 폭로하고 북한주민들을 좀더 인간적으로 그리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알로토 감독은 또 자신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북한주민이 김정일 초상화에 낙서를 한 벽보를 촬영한 비디오를 봤다고 덧붙였습니다.

20분짜리 이 단편 영화는 미국 일반인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영화 '말살'은 지난 해 미국 텍사스 주에서 열리는 '오스틴 영화축제'에서 '최고 단편 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관객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알로토 감독은 미국인 관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영화에 '진실한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 노동자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 체제에 반기를 드는 것은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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