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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미군 찰스 젠킨스 '40년 북한에서 경험 알릴 것'

  • 유미정

43년 전인 지난 1965년 주한미군 복무 중 탈영해 북한으로 넘어갔던 찰스 젠킨스 씨가 북한을 빠져나오기까지 40년 간 북한에서의 삶을 이야기 한 회고록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가 최근 미국에서 발간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자신의 아내를 따라 3년 전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 씨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은 외부 세상에 40년 간 북한에서의 경험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젠킨스 씨와의 인터뷰 내용 두 번째 마지막 편을 전해드립니다.

2002년 9월 17일 저녁. 무심코 텔레비전 뉴스를 지켜보던 찰스 젠킨스 씨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관영 뉴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고만 짤막하게 보도했습니다.

절망 가운데 한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37년 전, 24살의 젊은 나이에 북한으로 탈영했던 주한미군 젠킨스 중사. 그의 얼굴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 그는 22년 전 결혼한 일본인 납북자 소가 히토미와의 사이에서 미카와 브린다라는 두 딸을 두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왜 북한을 방문했을까? 그가 김정일을 만나 무슨 얘기를 했을까? 아내 히토미의 고국에서 온 최고 지도자라는 이유만으로 젠킨스 씨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대해 더 알고 싶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벽장 안에 숨겨두었던 중국산 라디오를 꺼내, 그동안 청취해왔던 ‘미국의 소리’ 방송과 일본의 ‘NKH 방송’에 주파수를 맞췄습니다.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70년대와 '80년대 간첩 훈련을 위해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북한은 이들 가운데 8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5명은 생존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생존한 납북 일본인들의 귀국이 허용되고 이 때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 히토미를 통해 그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열리게 됐습니다.

바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으로 체념했던 ‘거대한 감옥’ 북한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아내 히토미는 북한에 잔류한 남편 젠킨스 씨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1년여 이상 일본 정부에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5월 22일. 고이즈미 총리의 2차 방북으로 마침내 그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젠킨스 씨는 선뜻 북한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북한 정부가 자신을 보내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젠킨스 씨는 말했습니다. 북한 관리들은 그에게 중국에서 팩스로 전송돼 온 문서들을 보여주며, 미국 정부는 그와 가족들에 대한 아무런 동정심도 없으며, 결국 그가 북한을 나오면 탈영 혐의로 그를 종신형에 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젠킨스 씨는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합을 원했지만 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을 두려워한 젠킨스 씨는 두 딸과 함께 당분간 북한에 머무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젠킨스 씨와의 직접 면담에서 일본으로 갈 것을 권유했지만, 그의 의사를 존중해 다른 피랍자의 북한 잔류 자녀 5명만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 주선으로 2004년 7월 제 3국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이뤄진 히토미와의 상봉에서 젠킨스 씨는 마침내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와의 면담에서 받은 약속도 북한을 떠나겠다는 그의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고이즈미 총리가 면담에서 자신과 아내, 그리고 두 자녀가 아내의 고향인 일본의 사도 섬에서 여생을 지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지난 1965년, 부대를 이탈해 북한으로 넘어갔던 찰스 젠킨스 씨는 이렇게 해서 40여년 만에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벗어났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3백 킬로미터 떨어진 사도 섬의 마노 마을. 약 7천 명이 거주하는 이 한가한 어촌 마을에 젠키스 씨 가족이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젠킨스 씨는 북한을 나와 일본에 도착한 직후인 2004년 10월, 주일 미군사령부에 자진출두해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미군 역사상 최장기간 탈영병이 됐지만 재판부는 인도적 관점에서 그에게 금고 30일과 불명예 제대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반 평생을 북한 땅에서 살아야 했던 찰스 젠킨스 씨. 아마 북한에서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이동의 자유’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본에 와서 젠킨스 씨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운전면허증을 딴 것입니다.

도쿄의 운전학교에서 20일 만에 운전면허를 땄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젠킨스 씨. 그는 지금은 모터 사이클 면허도 따서 2대의 모터 사이클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젠킨스 씨는 사도의 관광지인 한 금광에서 설비 관리자로 일하면서, 선물가게에서 쿠키를 파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쿠키 판매에 뛰어든 이래 판매가 300 % 증가했고, 지난 해에는 6천 달러의 보너스까지 받았다고 자랑하는 젠킨스 씨에게서 제 2의 인생을 사는 환희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북한에서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참혹한 생활을 하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보복이 있을 것을 두려워해 자신의 회고록 2편의 준비를 극구 반대하는 아내에게 젠킨스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이 어느덧 68살. 나는 살만큼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경험한 것을 외부세상에 말할 것이라고…….

‘마지못한 공산주의자 (The Reluctant Communist)-찰스 로버트 젠킨스’ 와의 인터뷰 두 번째, 마지막 순서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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