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문제가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한국이 지난 4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한 데 강력히 반발하면서, 지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거론하며 한국 측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에 대한 북한의 주장과,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은 최근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자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4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이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인권이사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박인국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실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 정부는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의 중요성에 입각해 북한이 인권상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제네바주재 북한대표부의 최명남 참사관은 즉각 “한국의 발언은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최 참사관은 이어 “한국 정부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내용 정신을 알고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이틀 뒤인 6일 발표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 위원회(조평통) 의 담화를 통해서도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정상 선언을 거론하며 한국 측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한국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정불간섭과 민족 공조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워싱턴과 서울의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에 대해 서울의 민간 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영환 조사연구팀장은 인권 문제를 내정간섭으로 간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권은 이미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해서 이를 내정간섭이라고 하는 것은 케케묵은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또 한국이 자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남북정상회담 정신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이 온당치 않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0년과 2007년에 각각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1차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6.15 공동선언에는 내정간섭이나 민족 공조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2차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10.4 공동선언에는 국제무대에서 남북한이 협력한다는 조항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선언의 8항은 “남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을 들어 남한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미국북한인권 위원회의 피터 벡 사무총장은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얘기하려면 그야말로 일반 주민들의 삶과 인권을 놓고 얘기해야지, 주민들은 도외시한 채 정치 지도자들의 체면만을 생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피터 벡 사무총장은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얘기하려면 일반 주민들의 인권부터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리 최원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