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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 평양 현장 취재기자 전화 인터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현장에서 취재한 서울 중앙일보의 김호정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공연과 관련한 이모저모를 알아보겠습니다. 대담에 최원기 기자입니다.

최: 김호정 기자. 지금 평양 어디에 있습니까?

여: 저는 지금 평양 양각도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최: 오늘 공연 분위기를 좀 전해주시죠.

여: 예, 오늘 공연은 굉장히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우선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 마젤과 함께 북한 측의 통역사가 나와서 영어와 북한 쪽 말로 환영사 축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북한 시민들과 함께 미국, 한국에서 온 청중들이 따뜻한 분위기로 뉴욕 필을 맞는 분위기였습니다.

최: 오늘 첫 연주곡이 북한 국가와 미국 국가였다면서요?

여: 네. 오늘은 참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오케스트라의 연주와는 달리 뉴욕 필 단원들이 들어오면서 차곡차곡 서있는 순서대로 연주 무대가 열렸습니다. 왜냐면 바로 그 국가를 연주했기 때문인데요. 로린 마젤은 먼저 북한의 국가를 연주하는 예의를 보여주면서 바로 또 미국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관객들 역시요 예의를 표하기 위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듣고 박수는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최: CNN으로 보니까 북한 관중들은 처음에 좀 긴장한 것 처럼 보이던데 어떻습니까?

여: 그렇습니다. 약간의 북한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나 긴장을 완전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한 쪽 관객들과는 달리 굉장히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 아리랑 같은 음악이 나왔을 때도 어떤 감정을 절제하면서 박수를 치거나 점잖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듯 했습니다.

최: 오늘 가장 큰 박수는 아리랑에서 나왔습니까? 아니면 캔디드에서 나왔습니까?

여: 예상과는 달리 캔디드가 훨씬 뜨거운 반응을 보였는데요, 뉴욕 필 단원들도 공연 후 캔디드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북한 관객들을 인터뷰해봤는데요, 아시다시피 북한 쪽 관객들은 서양 음악을 받아들일 때 굉장히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리랑은 아무래도 우리 민족이 잘 연주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아무래도 무비판적인 모습으로 수용하려는 모습을 피해가려는 그런 반응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최: 지휘자 로린 마젤이 한국어를 구사해서 많이 웃기기도 했다던데요.

여: 로린 마델은 26일 오전에 있던 리허설 때부터 한국어를 열심히 연습했는데요, 종이에 써서 나와서 보고 말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 시민들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물론 가장 많은 뜨거운 반응과 환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본 미국 음악가가 한국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놀랍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최: 관중들 중에는 북한 내의 엘리트, 흔히 상류층이 많이 참석했을 텐데, 어떻습니까?

여: 네, 그렇습니다. 오전의 리허설과 비교해볼 때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오전의 리허설에는 상당히 색다른 리허설이었습니다. 보통의 리허설은 그날 연주할 곡을 미리 맞춰보는 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이날은 1천5백 명의 동평양 대극장 석이 꽉 찰 정도로 정장을 차려입고 온 관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북한 시민들에게 관람표를 나눠주는 것이었는데요, 이 때만 해도 굉장히 일반적인 시민들이 공연을 보고 싶어서 표를 구해서 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요.

예를 들어서 교사, 음악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든지, 음악 애호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던데 반해서, 저녁의 공연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를 꺼리거나 약간 딱딱한 자세로 공연을 관람하는 관중들이 많았습니다.

최: 북한 관중들이 미국과의 관재 개선에 대해 언급을 하거나 그러던가요?

여: 북한 청중들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 뉴욕 필 단원들은 연주를 마치고 어떻게 평을 하던가요?

여: 부모가 북한 출신인 미셸 김이라는 부악장이 공연 후 소감을 밝혔는데요, 자신이 항상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자라왔지만 지금같이 절실히 자신의 뿌리에 대해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11살 때까지는 계속 서울에 살아왔기 때문에 서울과 평양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왔지만 너무 달랐다. 이런 말을 했구요, 또한 창 밖으로 보았을 때 너무 painful 한 감정이 많이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올 때에는 이런 상황이 바뀌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평양 현지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취재한 한국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평양 현지의 분위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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