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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라면 대중화 시도’


북한 당국이 올해부터 라면을 대량으로 생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의 시장 독점화를 막는 동시에, 외국산 인스턴트 제품이 자칫 북한주민들의 개혁 개방 욕구를 자극할 것에 대비한 조치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서울 VOA의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어제 “올해부터 국산 속성국수, 즉 인스턴트라면이 인민들에게 널리 공급될 전망”이라며,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평양 밀가루가공공장에서 국내 원료에 기초한 생산공정을 확립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조선신보에 따르면 북한 최대의 밀가루제품 가공기지인 이 공장은 생산이 중단된 지 18년 만에, 속성국수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공급하게 됩니다.

이 신문은 이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밀가루 제품의 원료를 국제기구 등을 통해 들어오는 협조물자로 생산했으나, 올해부턴 북한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 공장의 로원철 기사장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으로부터 중유 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연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중국을 비롯한 외국산 속성국수제품이 나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로 기사장은 "적대국들의 경제 봉쇄 속에서 생산을 계속하려면 자체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에 있는 연료”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장은 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말부터 김책공업종합대학과 함께, 무연탄 연료 보일러 제작에 착수하는 한편, 공장 시설도 개보수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 기사장은 “지난1월 3일, 처음으로 무연탄 보일러를 가동해 국수를 생산한 뒤, 시내의 상점에 진열되자마자 모두 팔렸다”면서 “본격생산을 위한 설비 점검을 마친 2월 이후 우리 제품으로 외국산 국수를 모두 밀어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 북한연구소의 김승철 연구원은 “인스턴트 라면은 평양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고가품”이라며 “공장 가동률이 저조하고 식량난이 극심한 지방의 경우, 라면이 대중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 연구원은 “라면과 햄버거 등, 서구의 인스턴트 식품은 북한의 상류층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며 “이는 북한 상류층을 중심으로 서구식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한 탈북자 문성휘씨는 “현재 북한은 식자재 원료부터 생산설비에 이르기까지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할 능력이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공업 육성을 통해, 장마당에서 활개를 치는 중국산 식품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휘 씨: “입쌀 한 KG당 다섯 식구가 하루를 먹을 수 있지만, 라면 한 개로는 한 사람당 한끼밖에 못 먹습니다. 북한이 다 부분적으로 경공업을 활성화시켜서 시장에서 외국산 상품 특히 중국산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장에서 중국산 식품을 밀어내겠다는 의지로 보여집니다. 북한의 인스턴트 식품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실제로 장마당에서 보이는 인스턴트 식품은 모두 중국산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으로선 식품을 밀어내자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문 씨는 “북한이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제일주의’를 선언한 가운데 경공업을 육성하겠다고 한 것도 중국의 시장 독점화를 막기 위한 의도”라며 “그러나 산업기반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뚜렷한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창현 국민대학교 교수는 “컵라면과 비누 등 경공업 분야에서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는 것은 먹거리를 다변화하고, 중국산 제품의 시장 독점을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민대학교 정창현 교수: “컵라면 자체 생산은 식량난 타개의 기본 방향은 아닙니다. 현재 북한 유통에서 중국 자본이 70, 80%까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 당국에서 이의 심각성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북측에서 자제적으로 생산되면 북측의 자체 공식망을 통해 유통될 것이고 그 가격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수입산 컵라면보다 훨씬 쌀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귀남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북한이 2002년 시장경제 요소를 가미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외국산 식품이 거래되는 등 개혁의 속도가 빨라지자, 이를 통제하기 위한 북한당국의 선제적 조치로 해석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노귀남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일종의 예방적 변화입니다. 만일 지금 상태에서 변화의 국면이 국가가 통제하지 않는 상태로 가면, 북한 주민들의 변화속도는 정말 빠르거든요. (북한의 입장에선)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방식을 자꾸만 찾아내지 않겠습니까?”

북한에서 인스턴트 라면은, 2000년 10월 평양 대동강변에 ‘대동강 즉석국수 공장’에서 ‘꼬부랑 국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4년 이후 조선보통강상사와 홍콩의 리달무역공사가 합작한 ‘보통강 양해합영회사’에서 ‘즉석국수’라는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했습니다.

북한의 수출품 홍보를 위한 계간지 ‘포린 트레이드’에 따르면 ‘대동강 봉지즉석국수’와 ‘대동강 고뿌즉석국수’라는 이름으로 평양과 남포 등 일부 지역에서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석국수는 시원한 맛이 나는 국내 라면보다는 설렁탕의 육수 맛이 배어나는 중국식 라면 맛을 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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