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리비아가 3일 워싱턴에서 36년만에 처음으로 외무장관 회담을 열었습니다. 오랫동안 대치했던 미국과 리비아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리비아가 지난 2003년 핵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선언한 데 따른 것으로, 미국 내 안보전문가들은 리비아의 사례는 분명 북한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말합니다. 리비아의 핵 폐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보상에 대해 조은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3일 리비아 외교수장으로는 36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압델라흐만 모하메드 샬감 (Abdelrahman Mohammed Shalgam) 외무장관을 맞아 회담을 열었습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 달 기자들에게 리비아를 직접 방문할 의사를 밝히는 등 미국은 리비아와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년 이상 단절됐던 두 나라의 관계가 급진전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입니다.
리비아는 지난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이후 강경 반미 노선을 표방하고 테러단체들을 지원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79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주재 미국대사관이 시위대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하자 미국 정부는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합니다.
미국은 1981년에 리비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이후 리비아에 두 차례 폭격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미국은 리비아에 대해 여러 형태의 추가적인 외교, 경제 제재를 가했습니다.
리비아는 1992년 미국 여객기 폭파 테러를 일으킨 혐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도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받게 됩니다.
미국과 유엔의 경제봉쇄 조치로 경제가 마비된 리비아는 2003년 여객기 폭파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면서 안보리의 제재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리비아는 동시에 영국 정부에 접근해 미국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습니다. 영국의 중재로 2003년 3월부터 9개월 간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인 리비아는 그해 말 모든 핵과 생화학 무기를 포기할 것을 선언합니다. 비밀협상을 벌이는 도중에도 리비아는 미국과 영국의 핵 전문가들을 10여 차례 초청해 모든 핵 물질과 장비, 프로그램을 공개했습니다. 또 대량살상무기 포기 계획 발표 직후에는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사찰을 즉각 수용했습니다.
리비아식 핵 포기의 큰 특징은 `선 폐기, 후 보상'으로, 리비아는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 해제와 체제보장 등의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약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 계획을 일방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이후 미국 정부는 2004년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폭 완화하고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며 외교관계를 회복했습니다. 2006년 5월에 미국 정부는 리비아에 대사관을 설립하며 국교를 정상화하고,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습니다.
리비아의 핵 포기 이후 미국 정부는 여러 차례 북한에 대해 리비아식 해법을 따르라고 권고했습니다. 지난달 22일에도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 해를 결산하는 연말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이란을 겨냥해서 “이미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리비아 방식을 채택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과 리비아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비핵화 방식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렇지만 리비아의 경험이 북한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아시아 연구국장은 북한이 리비아의 사례를 객관적으로 보면, 핵무기를 포기하면 상당한 보상이 따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존 울프스탈 선임연구원은 리비아식 해법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이 적성국과 직접 협상을 벌여 성과를 냈다는 점이라며, 이는 6자회담을 통한 미-북 양자 협상과 공통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리비아 해법의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선 폐기, 후 보상' 방안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은 북한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울프스탈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북한에 리비아의 해법을 따르라고 권고할 때는, 폐기와 보상의 선후관계까지 똑같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