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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한인 이민사를 빛낸 위인들 – 도산 안창호 편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100년이 넘는 한인 이민사를 빛낸 위인들을 소개해드리는 마지막 시간으로, 도산 안창호 편입니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 평남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산의 부친 안흥국은 빈농의 선비였는데 도산이 열 두살때 별세해 도산은 조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안창호는 서재필이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실패함으로써 미국으로 망명했다 귀국해서 1896년에 설립한 독립협회에 가입해 지금의 평안도인 관서지부 책임자로 이 지방을 순회하면서 개화, 개혁 운동 연설을 하며 당시에 영국식 입헌군주제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독립협회가 1899년에 결국 해산되고 서재필은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고 이승만이 투옥되자 안창호는 유학을 떠납니다.

"도산은 미국에 가서 민주주의를 배워 한국에 접목시키기 위해 언더우드, 알렌등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안창호는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개화와 민주주의 신봉자가 됐습니다."

안창호는 1907년 귀국후 다양한 민족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도산은 1899년에 해체된 독립협회의 청년회원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해 비밀 결사인 신민회를 설립하고 평양에 대성학교를 개교했으며 서울, 평양, 대구에 태국서관을, 서울, 개성, 평양등 6개 도시에 청년 학우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민족 운동을 벌였습니다. "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와 연해주, 그리고 상해에서 각기 임시정부 수립이 추진됐는데 안창호는 이를 통합해 상해에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데 일조하고 임시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안창호는 임시정부에서의 내분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임정에서 사직한 뒤 1924년 가족이 있는 LA로 귀환합니다.

1926년 다시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사업을 하다가 윤봉길의사 의거에 가담한 죄로 일경에 체포돼 본국으로 이송돼서 감옥형을 마치고 1937년 일제의 민족운동 말살 정책으로 도산 안창호는 동지 2백 여명과 함께 수감되는 등 시련을 겪었으며 이때 수감 중에 병 보석으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중 1938년에 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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