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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한인 이민사를 빛낸 위인들 – 용제 서재필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100년이 넘는 한인 이민사를 빛낸 위인들을 소개해드리는 첫번째 시간으로 용제 서재필 편입니다.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서재필은 7살때 서울에 올라와 14살 때 장원급제한 수재로 개화파 김옥균을 알게 되면서 개화사상을 갖게 됩니다.

김옥균, 박영효 등과 1884년 갑신장변을 일으켜 신정부의 병조참판과 정령관을 맡았으나 청국의 군사개입으로 3일 만에 정변이 실패하자 서재필은 일본으로 망명합니다. 하지만 서재필은 일본정부가 망명객을 박해하자 1884년 4월에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망명합니다. 그후 서재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합니다.

"서재필은 영어를 배우려고 다녔던 샌프란시스코 메이슨 스트릿 장로교회의 성경 공부 반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하면서 자신의 일생에 중요한 도움을 주게 되는 홀렌백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도움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워낙 머리가 좋은 그는 1년을 월반해 3년 만에 우등졸업을 했습니다."

서재필은 그후 필립 제이슨이라는 미국명으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귀화한 미국시민이 된 뒤 고학으로 1892년 컬럼비아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메디컬스쿨에 진학해 한인 최초의 의학박사가 됩니다.

하지만 서재필은 조국의 개화에 봉사하기 위해 1895년 귀국해 독립협회를 창설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했으며 독립문을 건립하는 등 개화운동을 하다가 수구파 정부와 이권에 개입된 러시아와 미국이 1898년 5월 14일 그를 다시 미국으로 추방합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재필은 미국에 개업했던 병원을 닫고 독립 운동에 뛰어듭니다.

"1919년 3월 15일 재미한인전체회의에서 외교고문이 된 후, 필라델피아에 외교통신부를 설치하고 각국에 한국 독립을 위한 선전활동을 벌였습니다. 1919년 4월 한인자유대회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해 국제연맹과 미국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

서재필은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자 일시 귀국해 과도 정부의 미군정 최고 고문이자 특별의정관에 선임됐으나 국내 정계가 소란해지자 모든 직책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 의사일을 계속하다 1951년 86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이에 관한 기사는 www.koamhistory.com에 접속하시면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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