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납북 어선 ‘유풍호’ 선원 11명 중 1명만 생존


지난 1972년 북한에 의해 납치됐던 어선 ‘유풍호’ 선원 11명 가운데 1명만이 생존해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한국의 한 납북자 단체가 밝혔습니다. 이 단체는 이같은 사실과 함께 가족을 그리워하는 한 납북자의 애달픈 편지와 사진을 공개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서울 VOA의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35년 전 동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던 ‘유풍호’ 선원 중 1명만이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납북된 ‘유풍호’ 선원 중 1명은 생사확인조차 어려운 가운데 9명은 이미 사망했으며 나머지 1명만이 평안도에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최 대표는 2000년부터 납북자 귀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풍호’ 선원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밝혔습니다.

최 대표는 유풍호 선원 5명이 북한으로 끌려간 지 5개월 뒤인, 1972년 11월 9일 찍은 사진과 편지 두 통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납북된 유풍호 선원들의 사진과 편지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진에는 당시 선장이었던 배민호 씨를 포함해, 선원 김길정 씨와 남정렬 씨 등 5명이, ‘김일성 휘장’으로 보이는 배지를 단 양복을 입었으며 사진 뒷면에는 ‘사회주의에로 진출하는 기념사진’이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최 대표는 "이들 5명 중 남정렬 씨와 이수석, 이원재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김길정 씨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고, 배민호 씨만이 평안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납북된 선원 중 한명인 남정렬 씨의 사진과 편지도 오늘 공개됐습니다.

2001년 이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에서 남 씨는 머리가 빠지고 비쩍 마른 채 황토색 상하의를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남 씨는 남쪽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장 가서 만나고 싶지만 병에서 회복되지 않아 갈 수 없다”며 “북한에서 낳은 딸을 보내니 잘 상봉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남 씨의 편지와 사진은 중국의 탈북지원 단체를 통해 최성용 대표에게 전해졌습니다.

최 대표는 “남 씨의 귀환을 추진했으나 2개월 전에 남 씨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남 씨의 사진과 편지를 전해 받은 남 씨 가족들은 노년의 얼굴로 변해버린 남 씨의 사진을 부여잡고 “그 좋던 얼굴은 어디로 갔냐”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고 최대표는 전했습니다.

남 씨 가족들은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1일에도, 청와대를 찾아 남씨의 송환 문제를 검토해달라는 호소문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했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측이 '특수이산가족'이란 이름으로 북측에 요청한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에 대해, 북한이 확인해준 경우는 세 명 중 한 명 꼴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대한적십자사에서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열 여섯 차례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은 모두 2백14 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확인을 의뢰했으나 북측이 확인한 경우는 61 명에 그쳤고 나머지 1백53 명은 행방불명으로 통보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지난달 30일 끝난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대면 상봉을 남북 각각 연간 4백 명으로 확대하고, ‘전쟁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산가족 문제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전쟁시기와 그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란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납북은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

이에 대해 최성용 대표는 납북자의 생사확인 여부가 불투명한 만큼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확인 및 송환문제는 이산가족 상봉과는 별도로 시급히 추진돼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남북 정부가 이처럼 납북자 문제를 외면하는 동안 납북자와 그 가족들은 비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최대표는 주장합니다.

인터뷰: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이런 납치 사실도 엄격하게 드러났는데도, 우리 정부는 요구를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납치 사실이 없다’ ‘납북사실이 없다’는 북한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한국 정부입니다. 이는 자국민을 보호하는 정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망 확인 불가능, 생사확인, 앞으로 북한의 태도, 정부의 시행령 개정 등 납북 가족들에게 정확하게 남북한이 사과하고. 유해가 있으면 찾아서 가족에게 보내줌과 동시에 남북한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월 납북된 남편을 기다리던 73살의 유우봉 씨가 남편의 사망 소식에,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습니다.

현재 전시 납북자는 대략 1만 5천여명, 국군포로는 5백 명, 전후 납북자가 5백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까지 남측으로 돌아온 국군포로는 70여 명, 납북자는 6명 뿐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