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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LA 흑인 밀집 거주지서 발생한 Watt’s 폭동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LA 흑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Watt's 폭동에 관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1965년 남부 LA에서 발생한 이 폭동으로 한국인의 피해는 별로 없었으나 폭동의 여파는 한인 이민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5년 8월 11일 난폭운전을 한다고21살난 흑인 청년을 뒤쫓던 경찰이 이 청년을 검거하는 과정을 지켜 본 그의 형과 어머니가 거세게 항의하면서 시작됩니다. 또한 더운 여름 날 저녁 앞마당에서 더위를 식히다가 이를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까지 가세해서 항의하자 더 많은 증원 경찰이 출동하면서 서로 삿대질을 하다가 커진 싸움은LA사상 최대의 흑인 폭동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이 흑인 폭동에 뒤이어서 미국의 각 도시에서는 연이어 흑인 폭동이 일어났고 수년동안 계속해서 여름마다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들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동은 1963년 Martin Luther King목사의 평화 민권 운동에 이어서 일어난 폭력 수단을 동원한 흑인들의 집단 폭력시위로 흑인들의 문제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마침 발효된 Johnson대통령의 Great Society정책과 맞물려 흑인의 지위를 크게 향상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폭동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1965년 폭동으로 경찰관 2명과 소방대원 1명을 포함해 34명이 숨지고 모두 천 설흔 두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부상자 중에는 90명의 경찰과 136명의 소방대원, 10명의 주 방위군이 포함됐습니다. 6백 여채의 건물이 방화로 소실되고 재산피해는 4억달러에 달했습니다."

폭동이 발생하자 캘리포니아주지사의 지시로 이 지역에는 통행금지령을 내려지고 주 방위군 6천명이 투입되서 이 폭동은 엿새만에 진압되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민족은 이 지역의 상권을 쥐고 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폭동 이후 이 지역을 떠났고 마침 새 이민법으로 한인들이 많이 도미해서 유대인이 떠난 자리를 인수하게 됩니다. Watts폭동으로 Jefferson과 Vermont를 중심 한 USC근처에 1930년 대에부터 형성되었던 초기 한인타운은 올림픽 가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한인타운에 이전해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4.29 폭동에 관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이에 관한 기사는 www.koamhistory.com에 접속하시면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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