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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제 3국을 통한 이민 –브라질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서 제 3국으로 부터의 한인 이주에 대한 얘기 계속해 드립니다. 비교적 높은 수준의 월급을 받는 전문직인 간호사와 원래가 고학력인 서독 광부 출신의 이들 이민자들은 특히 생활력이 강해 경제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조성할 수 있어서미주 한인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생활력이 강하고 가족애가 남달리 강한 이들 서독 출신 재미 한인은 미주 한인 사회에 직접 기여한 바도 크지만 이들의 가족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된 수 많은 가족 이민이 한인 사회에 기여한 바 역시 지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의 대표적인 한인들로는 한국식 건축 양식으로 단장한 영빈관 그리고 VIP Plaza를 올림픽 가에 세워 현재의 코리아타운 형성에 기여한 이희덕 부부,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과 한미동포재단 이사장을 역임하고 본국의 고향 공주에 장학금을 매년 보내면서 부동산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박형만 부부, 한미 은행의 창립 이사로 이사장을 역임한 봉제업계의 큰손 안이준 부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서독 출신 한인은 서독동우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이민은 1962년에 시작된 남미 이민의 일환으로 시작됐습니다.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칠레 등으로 10만 명 이상이 이민을 갔는데 이들은 대개가 젊은 가족 단위로 이민을 갔다는 특징이 있고 이민 목적은 농사에 종사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의 실정이 농사에는 맞지 않아서 주로 옷 제품에 종사하다가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남미를 경유해서 미국에 온 이들의 통계는 없으나 LA의 경우 한인 사회의 젖줄이라고 부르는 다운타운의 의류업계를 이들 남미 경유 한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재미 한인사회의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유한 나라마다 친목회가 있어서 서로 친목을 다지며 나중에 온 분들의 미국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LA 흑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Watt's 폭동에 관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이에 관한 기사는 www.koamhistory.com에 접속하시면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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