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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 제 6회 ‘한미우호상 수상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지부장과 한국주재 대사를 역임한 도널드 그레그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이 한-미 두 나라 간 협력과 우호 친선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의 민간단체인 한미협회가 수여하는 제 6회 ‘한미우호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그레그 이사장은 그동안 북한과 한국의 광주 방문 등을 통해 ‘한’의 정서를 느꼈다며, ‘한’을 풀 수 있는 길은 직접 대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그레그 전 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먼저 ‘한미우호상’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 상이 대사께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그레그: 수상하게 돼서 아주 기뻤습니다. 제가 6회 수상자 인데, 그동안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 남덕우 전 한국 총리, 주한 미 8군 사령관을 지낸 밴프리트 장군, 그리고 저의 선임자였던 제임스 릴리 전 주한대사 등, 아주 훌륭한 분들이 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전쟁 이래 한국인들을 위해 일해온 공로를 치하하는 목적으로 제게 상을 준다고 해서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기자: 수상식 연설에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와 함께 지도에서 한국을 찾으려고 했는데 ‘조선’으로 된 나라만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셨습니다. 한국이 미국인들에게 그토록 미지의 나라였다는 말씀인데요,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해가 지금은 많이 나아졌습니까?

그레그: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에서, 또 은퇴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하는데 미국인들이 정말 한국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인 1905년 카쓰라-태프트 협약이나 을사조약, 그리고1945년10분만에 결정이 난 한반도 분단, 미군 함정 제네럴 셔먼호의 평양 침입 사건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자: 수상식 연설에서 한국인의 ‘한’의 정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시죠.

그레그: 저는 북한을 네 번 방문했는데요, 사람들이 제게 북한을 방문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광주를 네 번 방문하면서 느꼈던 아주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바로 ‘한’의 감정인데요, 합리화될 수 없는 일에 대한 분노가 광주에서 아주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직접 대화하면서 이 ‘한’의 감정이 점차 약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똑같은 양상을 북한에서도 발견했습니다.

이후 저는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더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의 감정이나, 분노, 오해에 대한 해결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기자: 북한 핵 문제가 진전을 이루면서 미국과 북한 간 관계정상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워싱턴과 평양에 각각 미국과 북한 대사관이 들어서고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평화조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십니까?

그레그: 워싱턴과 평양에 대사관 설립과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평화조약 체결을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저는 구체적인 정식 외교관계 수립 이전에 평화조약 체결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한이 전적으로 참여하는 경제발전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기자: 평화체제 논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조금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대사께서는 평화체제 논의가 언제 시작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레그: 두 가지 사안이 공생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좀 더 확고한 비핵화의 진전이 이뤄지면 평화체제 논의가 더 쉬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면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기반을 동시에 쌓을 수 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정도 될까요? 이 두 가지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기자: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 진전을 위해 대사께서 두 나라 모두에 하고 싶은 제안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그레그: 두 나라 모두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는 한 때 리비아의 지도자 가디피와의 핵 폐기 협상에 간여했던 한 영국 정보 관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가다피를 처음 만났을 때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입장에 대한 논리와 그런 입장을 취하도록 만드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쌓이자 가다피는 결국 핵 프로그램의 포기를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나중에 북한에서 김계관 부상을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리비아에 대한 공상은 그만 하시죠”라며, 그런 일은 아주 오랫동안 양자 간에 강도높은 대화가 있은 후에 가능한 일이고,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때가 2005년 이었습니다. 이후 상황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자: 1968년 미국 함정 푸에블로호가 나포됐을 당시 일본에 계셨던 걸로 압니다. 북한이 양국 관계 정상화의 상징적 조치로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반환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레그: 푸에블로 호의 부커 선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푸에블로 호 반환이 자신과 승무원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얘기하더군요. 이 배의 이름을 딴 콜로라도주 푸에블로 시민들과도 얘기를 했는데, 그들은 배가 반환되면 해체해서 푸에블로 시의 한 공원에 다시 조립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2003년 북한에 갔을 때 저는 처음으로 김계관 부상에게 푸에블로 호의 반환을 제안했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그 해 10월 북한으로부터 반환 결정을 통보받았는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가 불거지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최근 미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북한 선박을 구출한 것은 아주 훌륭한 제스처라고 생각합니다. 북한 측의 선의의 제스처로 푸에블로 호가 반환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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