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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100년의 발자취] 해외 한족 연합회 VI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해방된 조국으로 환국한 한족연합회에 관한 얘기가 계속해 드립니다.

해방후 미주에서는 김호, 한시대, 송종익, 김병연, 김성낙등 5인과 Hawaii에서 김원용, 도진호, 전경무, 최두욱, 조제언, 정두옥, 안창호(도산 안창호와 동명이인), 박금우, 안정송 등 9인등 총 14인이 한족연합회 대표로 LA와 Hawaii에서 재미한인의 대표로 선발돼 1945년 10월 귀국한 뒤 독립된 조국 국가 건립에 이바지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조국은 미군 점령하에 남북으로 갈린 상태여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당시 조국은 38선 이북 지역은 소련군이, 이남지역은 미군이 점령하여 군정이 실시되고, 복잡한 국내사정으로 대부분은 다시 미국으로 귀환하고, 김호와 김원용은 미 군정이 1946년 12월에 설립한 남조선 과도입법의회의 의원에 피선되어 과도입법의원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그때 김호는 적산분과위원장으로 많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미 군정이 설립한 과도입법의회(의원장 김규식)의 의원은 90명으로 45명은 간접민선으로 선출됐고 45명은 미 군정관이 임명했으며 독립된 한국의 민주국가 건설에 필요한 기초적인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입법기관 이었으나 1948년 5월 제헌국회가 구성되자 해산하게 됩니다. 한편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한민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열되었고 국제연합이 미국의 요청대로 남북통일선거를 가결했지만, 소련과 북한의 선거 반대에 부딪칩니다.

"이승만은 선거가 가능한 남한 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해서 우선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측이 득세함으로써 1948년 5월에 남한 만의 총선거로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이승만을 초대대통령으로 선출해 그 해 8월 15일 38선 이남의 남한에는 대한민국이 수립 되었습니다. 따라서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인사들은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배척 받아 일부는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했으며 김호는 그의 신변을 걱정한 미 군정의 주선으로 미 군용기 편으로 미국으로 귀환했습니다."

다음 주 이시간에는 해방후 유학생과 국제결혼에 관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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