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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린튼 ‘북한주민들, 2000년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 대전환’


지난 1979년부터 북한을 60여 차례 드나들며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펼쳐온 유진벨 재단의 스테판 린튼 이사장은 지난 2000년을 정점으로 북한주민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력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또 대북 지원 모니터링 논란과 관련, 국제사회의 엄격한 잣대는 북한 내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4일 미국 워싱톤의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는데요, 부지영 기자와 함께 이날 토론회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지난 2000년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주민들의 인식에 대전환이 일어났다고 스테판 린튼 이사장이 말했다죠?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했습니까?

답: 네, 우선 스테판 린튼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주민들은 한국을 더 이상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등 인식의 대전환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지난 2000년 김 전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려 환영행사장까지 가는 길에 평양 시민들이 도로에서 붉은색과 분홍색 꽃술을 흔들었다며, 그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는데요.

북한에서 붉은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분홍색은 김일성 주석을 상징하는 색인데, 북한주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두 사람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면서 동시에 한국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린튼 이사장은 또 1970년대 한국을 반드시 무너질 나라로 여겼던 북한이 1990년대에는 한국에 대해 극심한 거부감을 나타낸 데 이어, 북한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한국인들에 대해 비속어를 쓰지 않으며, 한국 대통령이 누구이던 절대 개인적으로 비하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북한주민들은 더 이상 한국인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건데요. 린튼 이사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이같은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엠씨) 여기서 잠깐 린튼 이사장이 어떤 인물이지 말씀해 주시죠?

(부) 스테판 린튼 이사장은 지난 1895년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던 유진 벨 목사의 4대 외손자로, 1979년 이후 현재까지 60여 차례 넘게 북한을 드나들며 결핵 퇴치 등 다양한 의료지원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지난 1995년 미국에 대북 의료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 재단을 세운 뒤 2000년에는 한국 지부를 설립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북한을 오가며 대북 구호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 그렇게 여러번 북한을 드나들다 보면 누구보다도 북한의 변화상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답: 그렇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자신이 처음 북한 땅을 밟았던 1979년과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초반을 비교해 보면 지난 20년 간 북한 내에서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력의 차이가 정말로 엄청나다며, 자신이 1980년대 겪은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북한 전역을 돌아다니며 비교적 정보가 많은 층에 속했던 북한의 한 운전수가 자신에게 '북한에서 해가 뜰 때 한국에서도 해가 뜹니까'라고 물을 정도로 한국은 북한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너무나 먼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들어서, 이제 북한주민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그저 호기심을 갖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 그렇다면 북한체제 자체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인식변화는 어떻습니까?

답: 네. 린튼 이사장은 외부세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을 방문해 보면 중국 국경 지대보다 북한의 기간시설 등이 훨씬 더 나아보였고, 북한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주체사상과 사회체제에 대해 매우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린튼 이사장은 북한에 식량이 모자란다는 얘기가 들릴 때쯤, 어느 북한인과 옥수수 가을겆이가 한창이던 중국을 함께 방문했을 때 "언젠가는 북한도 중국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동행한 북한인은 너무나 화를 내며, "중국인들은 1백 위안에 자신의 딸을 판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꿈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빵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빵만 갖고 있다. 그들은 꿈을 배신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자신들의 '꿈'에 대해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북한이 적과 아군 사이 중간지대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른바 '차세대 문제'를 겪으면서 사회체계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고, 린튼 이사장은 설명했습니다.

문: 외부 구호활동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태도는 어떤지 궁금한데요. 스테판 린튼 이사장의 평가가 어땠습니까?

답: 린튼 이사장은 "서로 간에 적응이 이뤄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호 지원물자의 분배 감시, 이른바 모니터링 논란에 대해서는 지나친 서구의 잣대라고 주장했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서구와 아시아의 너무나 큰 문화의 차이 때문에 현재 국제사회가 북한 측에 요구하는 모니터링 기준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주민들을 수술을 원하지 않는 신체에 비유해 설명했습니다.

그냥 모니터링을 위해 북한에 불쑥 들어가는 것은 수술을 원하지 않는 사람의 몸에 수술도구를 갑자기 푹 찔러넣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럼 마취에서 깨어나 정말 기분이 상할 것이라며, 모니터링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일련의 논란과 관련해 똑같은 과정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의 문제라고, 린튼 이사장은 말했습니다.

문: 그렇다면 유진벨 재단은 이 모니터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답: 린튼 이사장은 이같은 이유로 유진벨 재단은 '모니터링'이라고 칭하지 않고, 구호물자를 전달할 때 일종의 종교의식처럼 수혜자들을 대상으로 개별 기부자 명의의 '헌정식(Dedication Ceremony)'을 갖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린튼 이사장은 또 자신은 사업 주체들이 마치 북한에서 '땅 주인'처럼 행세하고 있기 때문에 금광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며, 북한과의 사업에 있어 지속 가능하고, 이윤은 물론 위험까지 나눌 수 있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네, 부지영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어제 워싱턴에서 있었던 북한주민들의 변화상을 주제로 한 유진벨 재단 스테판 린튼 이사장의 발언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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