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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해외한족연합회 V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해외한족연합회의 외교 활동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족연합회는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 한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전국의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해방된 조국에 임시정부가 환국해서 일본으로부터 정부를 인수해야 한다고 믿고 따라서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외교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연합회의 경비를 조달하는 산하기관으로 중경임시정부의 승인으로 워싱턴 디시에 설립된 미주외교위원부가 당면한 제일의 과제는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전쟁이 끝난 뒤 임시정부를 승전국으로 위치를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한 국가는 소련, 에스토니아, 프랑스의 드골 임시정부 뿐이었고 미국과 영국, 중국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외교위원부는 제일 중요한 미국의 승인을 받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고 위원장인 이승만의 외교활동과 관련해 여러가지로 실망한 재미한족연합회의 의사부(Hawaii)와 집행부(LA)는 중경임시정부와 여러 논의 끝에, 결국 임시정부는 1944년 8월 연합회가 자체적으로 Washington DC에 외교사무소를 설치하게하면서 LA의 김호와 HawaiiI의 김원용을 외교위원으로 임명했습니다."

따라서 김호는 이승만에게 지급하던 활동비 지급을 중단하고 그의 측근인 김원용를 발령해 외교위원회를 보강했습니다. 이는 이승만의 자존심을 크게 해치는 인사 조치였기 때문에 이에 크게 반발한 이승만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동지회를 연합회에서 탈퇴시키고, 동지회는 중가주와 LA에서 민중 대회를 열어 김호와 연합회 타도 궐기 대회를 갖습니다. 그러다가 한족연합위원회의 워싱턴 외교사무소가 외교활동을 벌이던 중 조국은 독립을 맞게됩니다.

"연합위원회의 Washington사무소는 독자적으로 외교활동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인원도 확층해서 이미 일본의 패망이 현실로 다가온 상황 하에서 앞으로 있을 전후 국제회의에서 독립된 한국의 근대적인 국가건설을 대비하기 의한 외교활동을 벌이던 중,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해 조국은 독립을 맞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해방된 조국으로 환국한 한족연합회에 관한 얘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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