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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해외한족연합회 IV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해외한족연합회 활동에 관한 얘기로 맹호군의 활동과 한족연합위원회의 독립을 위한 외교 활동에 관해 전해 드립니다.

중경임시정부가 1942년 3월 맹호군을 한국광복군으로 인허하자 맹호군은 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관리 하에 임정 광복군의 군사조직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1943년 6월 미 육군의 방침으로 맹호군은 군사조직의 권리를 상실하게 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미 정부의 국방행사에 참여하도록 요청된다는 방침만 결정된 채 사실상 해산됐습니다.

1942년 국치일인 8월 29일(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을 기해 LA시청에 태극기를 계양하는 뜻 깊은 행사가 벌어집니다. 이는 일본의 침략으로 떨어졌던 한국의 태극기가 32년만에 외국의 관청에 계양 되는 뜻 깊은 행사로 LA시가 한국을 독립국가로 승인하는 의미 깊은 행사였습니다.

"연합회집행부 위원장 김호 주도로 거행된 이날의 국기현기식은 장엄하게 진행되었는데 한미 양측의 많은 지도자들이 단상에 자리하고 Pershing Square에서부터 시청까지 미국군악대와 미군 의장대의 뒤를 따라 한복을 입은 한인부녀와 정장을 한 한인과 군복으로 정장한 맹호군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해 시청 앞에 당도한 뒤 정렬한 가운데 LA시장 Baron이 국기계양식을 거행하고 미군 군악대의 주악으로 한미 양국가를 연주하고 태극기가 게양될 때 한인부녀합창단이 애국가를 부르니 참석한 800여명의 한인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호는 현기식을 성공리에 마치고 미국의 48개 주지사와 대도시 시장에 형조공문을 발송해 국기일(Flag Day)에 연합국기와 같이 한국의 국기도 게양해 주기를 요청함으로써 많은 지역으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후 한족연합위원회는 외교에도 관심을 두게 됩니다.

"연합회는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 한국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전국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어 해방된 조국에 임시정부가 환국하여 일본으로 부터 정부를 인수하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 외교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다음 주 이시간에는 해외한족연합회의 외교활동과 관련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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