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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 수나 리 씨] '사진'으로 인생을 기록으로 남겨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게되는 소중한 순간들… 결혼, 임신, 그리고 소중한 아기의 탄생…

사진작가 수나 리 씨는 이처럼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을 기록으로 남겨줍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한… 수나 리 씨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갖가지 인생을 만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수나 리 씨//

“어떤 분들은 너무너무 즐거운 일로도 오시고, 어떤 분들은 정말 암에 걸려서 자기가 이제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 남겨놓으려고 오시고 하니까, 좋은 추억, 나쁜 추억, 즐거웠던 추억, 아팠던 추억들이 있는데…”

수나 리 씨는 특히 부두아 (boudoir) 사진으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어로 규방을 뜻하는 부두아는 여성의 아름다운 신체를 돋보이기 위한 사진으로, 미국 여성들 가운데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연인을 위해, 또는 한 때 아름다웠던 몸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부두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우울증에 빠졌던 한 중년 여성은 수나 리 씨에게 사진을 찍은 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수나 리 씨//

“부인이 참 예뻐요. 그런데 나이가 먹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바뀌잖아요. 건강도 안 좋았고 여러가지… 그런 스테이지에서 제가 사진을 해주고, 뷰티, 그런 걸 다시 다 이렇게 쉐이프, 그런 걸 잘 찾아서 사진을 해드렸어요.”

그 여성의 남편은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 처럼 기운이 되살아났다며, 은행에서 빚을 얻어서까지 사진을 찾아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1백50 센티미터도 되지않는 키에 1백 킬로그램 이상 몸무게가 나갔던 한 여성은 수나 리 씨의 카메라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에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나 리 씨//

“그 여자 사진 찍기가 힘들었어요, 솔직히… 지금은 그래도 많이 포토샵 그런 게 있어가지고 쉽잖아요. 옛날에 그렇지 않았어요. 남편이 멀리, 다른 나라에 가 있으니까 사진을 좀 해서 보내고 싶은데 너무 자기가 솔직히 큰 거에요. 그러니까 촬영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여기저기.. 자기가 여러 군데를 갔었는데 너무 횃하게 나와가지고 도저히 사진을 못 찾았다고.. 내가 만약에 사진을 못 찾아도 기분 나빠하지 말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고..”

요즘에는 특히 아이를 가진 모습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임신부 사진이 유행입니다.

//수나 리 씨//

“아이를 갖는다는 그 자체가 정말 축복이잖아요. 아름다고.. 애기에 대한 사랑 묘사하고, 부부에 대한 그 정을 묘사하고, 또 그런 거가 굉장히 요즘은 제가 봐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수나 리 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8년에 미국에 왔습니다.
//수나 리 씨//

“열일곱살때 우리 집이 이민을 하게 됐는데요. 저는 언니하고 미리 왔어요. 집안 식구들이 다 이민 수속이 끝나기 전에… 저희들이 미리 와서 학교를 들어가게 돼서…”

수나 리 씨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처음 받아들이기 시작한 아이오와 주립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지만 1학년을 마친 뒤 미술 분야에서 좀 더 권위있는 인디애나 대학교로 옮겨 갔습니다. 수나 리 씨는 대학 2학년때 사진학 강의를 듣던 중 사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수나 리 씨//

“사진은 아주 정확할 수가 있고 굉장히 또 일루시브할 수 있고 그래서, 너무너무 정확할 수 있잖아요. 레코드 킵핑으로.. 그리고 또 아주 유 리얼리 쿠드 두 섬씽 엘스… 사진으로 그런 플렉서빌리티가 좋았구요.”

수나 리 씨는 사진은 순간을 정확하게 담아내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거기에 무언가를 더할 수도 있다며 그런 유연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 사람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의 감정까지 담아낼 수 있는 인물사진에 마음이 끌렸다고, 수나 리 씨는 말합니다.

//수나 리 씨//

“조명으로 넓은 얼굴도 좁힐 수 있고, 짝짝이인 눈도 앵글로 잡아줄 수가 있고,

웨이트 같은 것도 좀 줄일 수 있고, 또 뭐 풀할 수도 있고, 그런 조명으로 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의 라이프의 이모우션을 캡쳐를 해서 그 사람들 라이프의 한 부분이 된다는 거…. 또 그 사람들 추억의 제가 한 부분이 될 수 있고, 그 사람들을 제가 아름답게 할 수 있고, 또 그냥 캐릭터를 캡쳐를 할 수도 있고.. 플렉서블할 수 있는 사진이 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1970년대말 남편의 일 관계로 워싱톤에 온 수나 리 씨는 1981년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인근에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동업하는 형식이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곧 갈라서게 됩니다. 수나 리 씨는 처음에는 사진인화와 현상까지 직접 작업을 했었다고 말합니다.

//수나 리 씨//

“저는 완전히 그냥 제 사진을 뽑았죠. 프로페셔널들 약간 좀 해 주고.. 그랬는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거는…냄새, 그 케미컬이 굉장히 강했어요. 지금도 제가 하도 냄새를 한 몇년 맡았더니 폐가 좀 약하대요, 제가… 그렇게 강했어요, 그 냄새가..”

수나 리 씨는 동업자와 6개월 만에 갈라선 뒤 혼자 사진관을 경영하면서 사업경험이 없어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사진관이 드물었기 때문에 멀리 다른 주에서까지 한인 고객들이 찾아왔다며, 덕분에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수나 리 씨//

“그 때만 해도 한국 사람이 많지가 않았어요. 스튜디오는 저 하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열었지만 타주에서까지 한국 분들이 오시더라구요. 볼티모어에서도 오시고, 리치몬드에서도 다 절 찾아오시고.. 그래서 굉장히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수나 리 씨의 고객들 가운데는 2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나 리 씨//

“이십몇년을 거의 그냥 저만 따라다니는 미국 사람들이 꽤 많아요, 이제는.. 오래 돼서… 한국분들은 이제 아시는 분들만 저에 대해서 알고, 또 퀄러티에 대해서 아시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사진, 정말 중요한 사진들.. 그런 건 절 찾아오세요.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많지않지만 오래 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굉장히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한국 분들이….”

첫 딸의 백일 기념사진을 수나 리 씨에게 찍었다는 한인 김 원 씨는 수나 리 씨의 작품은 사진이라기 보다 예술 작품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김 원 씨//

“결혼 12년 만에 너무나 오래 기다리던 애기를 낳아서, 좀 특별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찾아갔거든요. 백일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우리 애기 처음 가졌을 때 우리의 고마움, 감사함, 사랑.. 그런 거가 잘 표시가 나게, 그렇게 우아하고 부드러운, 그런 분위기를 잘 내주셔서 만족스럽게, 감사하게 잘 보고 있어요.”

수나 리 씨는 현재 버지니아주 맥클레인으로 자리를 옮겨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이웃 주민은 물론, 한국의 전 대통령을 비롯해 미 행정부 고위 관리, 미식축구 선수, 텔레비젼 방송 앵커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수나 리 씨의 카메라 앞을 거쳐 갔습니다.

//수나 리 씨//

“비지니스라기 보다는 정말 취미에 가까운 건데… 자기가 원하는 만큼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소개가 안되잖아요. 사진이 마음에 들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플로리다에서도 오고, 사우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도 오고… 거기도 사진 하시는 분들이 많아도 가끔 저를 찾아서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보람을 느끼고 있는데, 뭐 노하우 보다는 그냥 열심히 주어진 일에 열심히 노력하고….”

수나 리 씨의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인 스테이시 씨는 사진을 찍히는 여성 자신도 몰랐던 아름다움을 수나 리 씨는 끄집어내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스테이시 씨//

스테이시 씨는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을 뿐인데 나중에 나온 사진을 보고 스스로의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스테이씨 씨는 앞으로도 계속 수나 리 씨를 찾아 조금씩 변화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수나 리 씨의 뛰어난 사진기술과 예술적 감각은 고객들 뿐만이 아니라 사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높습니다. 수나 리 씨는 버지니아 사진작가 작품대회와 미 전국 사진 작품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수나 리 씨//

“저희들이 작품대회를 하거든요. 1년에 한번씩.. 50주에서도 하고.. 저희들이 1등하고 그런 것들은 엡캇 센터 홀 어브 페임에 전시돼 있구요. 버지니아주에서도 1년에 한번씩 작가대회가 있어요. 거기서도 저희들이 가끔 1등한 것들, 그런 것들은 론 그거로 책에 나오고 그러죠.”

수나 리 씨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진관을 운영해온 지도 25년이 넘었습니다. 수나 리 씨는 그동안 일에 심취해 가정에 소홀했던 감이 없지않다며, 앞으로는 가족을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을 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수나 리 씨//

“할머니가 됐거든요. 손자, 손녀를 봤는데.. 손녀는 지금 임신중에 있고 11월에 이제 애기를 낳는데.. 물론 제가 작품생활을 좀 더 포커스해서 책을 하나 평생 한 일을 발표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있고, 또 한가지는 좀 더 자신에 충실해야 되지 않겠나,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제 자신을 위해서도 그동안 못해 준 사랑을 더 해야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때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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