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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실무기술팀 판문점 통해 11일 방북


북 핵 협상이 진전을 이루면서 미국과 북한 간 관계가 민간교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드렸습니다만, 북한 측은 11일 방북하는 미국의 ’핵 불능화 실무기술팀’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격 허용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한 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과거의 미-북 관계에 비춰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져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 있는 VOA 김규환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김 기자, 미국의 ‘핵 불능화 실무기술팀’이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다면서요?

답: 네, 그렇습니다. 북한을 방문해 핵시설 불능화 방안을 협의할 국무부와 에너지부,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들로 구성된 미국 대표단이 1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습니다.

미국 실무팀 대표이며 미·중·러 3개국 전문가 10여명으로 구성될 ‘핵불능화 실무기술팀’의 단장을 맡을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인천공항에서 “이번 방북의 목적은 불능화 준비가 된 핵 시설들을 둘러보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한국과장 등 미국 대표단은 임성남 외교통상부 북핵외교기획단장 등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시내 한 호텔에서 만찬을 함께 하며 북한과 합의해야 할 불능화의 기준에 대해 조율했습니다.

미국 대표단은 11일 판문점을 통해 방북해 현지에서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과 합류한 뒤 15일까지 영변 등지에 머물며 불능화 대상 핵시설들을 둘러보고 이들 시설을 불능화하는 기술적 방법에 대해 북한 측과 협의한 뒤 15일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돌아옵니다.

미국 정부 관계자가 그동안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간 경우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더욱이 부시 행정부 들어선 이후 지난 2002년 10월 대통령 특사로 지명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 일정을 준비하기 위한 미국 실무진이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 이래 판문점을 경유한 입북은 없었습니다.

(질문) 북한 측이 이처럼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답: 북한 측이 ‘성의를 표시하는 것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거치면서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따라서 추가로 중유를 받지 않고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등을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음에도 불능화를 위한 행동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기왕에 내놓기로 약속한 것을 빨리 이행해 정치·경제적 보상을 빨리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이번 미국 정부의 ‘핵 불능화 실무기술팀’의 판문점을 경유한 방북은 북한 측의 또다른 미국에 대한 화해 손짓으로 해석되는데요?

답: 네, 서울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 대표단의 판문점을 통한 방북을 미·북관계 개선과 핵문제 진전을 감안한 북한측의 ‘성의’ 표시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9일 “북한 당국이 점차 가속화되는 북·미 관계정상화 움직임 속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알리기 위해 불능화 기술팀에게 판문점 경유를 허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질문) 사실 지금까지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사례는 상당히 드물었죠?

답: 네, 과거 미국 측 인사로 판문점을 경유해 방북한 사례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토머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북핵 위기 해결사로 판문점을 거쳐 입북해 김일성 당시 주석과 면담해 위기를 종식시키고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중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허바드 전 주한 미 대사는 같은해 12월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 미군 헬리콥터가 비무장지대 북한측 지역에 추락했을 때와 2000년 10월 역시 부차관보로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각각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미뤄볼 때 북한측은 미국과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극히 제한해 판문점을 개방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4월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빅터 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경우 방북할 때는 중국 베이징(北京)을 경유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이 역시 한국전 때 숨진 미군 유해의 운구를 위한 것으로 북한측은 미군 유해의 송환을 대미 성의 표시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비핵 평화단체인 ‘퍼그워시회의’ 창설자인 조셉 로트블랫 박사가 2001년 4월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려다 북한 측의 거절로 베이징을 경유해야 했고, 독일·조선 의원친선협회 대표단은 2004년 6월 방북했다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오려 했으나 불발에 그쳤습니다.

(질문) 미·중·러 3개국 ‘핵 불능화 실무기술팀’의 방북 자체가 북한 측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주목되는 대목이죠?

답: 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핵불능화 실무기술팀’의 방북 사실을 발표하면서 ‘실무기술팀’의 방북은 중국 선양에서 열린 6자회담 비핵화실무그룹회의 때 북한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이는 북한측이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가 진지함을 입증하기 위한 제스처인 셈이다.

힐 차관보는 불능화 기술팀의 방북 의미에 대한 질문에 “북한을 포함해 모든 당사자들이 핵문제의 결실을 봐야 한다는 목적의 진지성의 표시”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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