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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해외한족연합회 II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해외한족연합회에 관한 두번째 시간으로 한족연합위원회의 활동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1939년 유럽에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Hawaii의 진주만을 폭격해 미국과 일본 간 전쟁이 발발한 것과 때를 맞춰 조직된 연합회는 미주한인의 안녕을 도모하는 한편으로는 조국독립을 성취하기 위하여 막중한 사업들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국이 일본의 공격으로 전쟁을 하게 되니 일본의 통치 하에 있던 한국인은 법리상 일본인 취급을 당해 적국국민 (Enemy Alien)으로 분류되서 재미 한인의 재산이 동결되었고 Hawaii 에서는 자유통행마저 제한을 받게됩니다. 이에 한족연합위원회는 한인들의 피해를 방지하는데 앞장서게됩니다.

"한족연합위원회는 한인 증명서를 발행하고 자동차 스티커 즉 표장도 발급해 한인의 신분을 증명하도록 만들어 한인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미국 중앙정부에 교섭해서 국무부와 법무부의 특별 행정명령으로 한인에 대해 적국인 대우를 하지 않게 하면서 재미 일본인들이 격리수용될 때도 한인은 이에서 면제받고 재무성 행정령으로 한인의 재산동결도 해제해 주었는가하면 하와이 총독도 한인은 적성외국인이 아닌 우호적 외국인 (Friendly Alien)의 대우를 받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연합위원회는 재미한인들에게 미국 군대에 입대 할 것을 장려하고, 적십자후원과 전시공채 (War Bond) 구입을 권하는 등 연합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 받기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한인이 연합국 국민의 의무와 역할을 하도록 독려했습니다.

"1945년까지 195명의 한인이 미 본토에서, 30여명이 Hawaii에서 각각 미군에 지원 입대했습니다. 당시 입대한 안창호의 딸로 3.1 여성동지 회장을 역임하고 해군 대위로 제대한 안수산과 한미박물관 이사장을 역임하고 육군 대령으로 제대한 김영옥은 한인 사회에서 존경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6년 1월 타계했습니다."

한족연합위원회의 활동 상황은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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