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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 조 김 씨] 미국 사교춤 지도 30년 '플로어에 나가면, 거긴 딴 세상이예요'


스윙, 차차, 맘보,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살사에 이르기까지, 파트너의 손을 잡고 무대를 누비는 사교 춤은 미국에서 건전한 취미생활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출연해 춤 실력을 겨루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인들의 사교 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건 Dance Sports (댄스 스포츠)가 아니고, American Social Ball Room Dance, That’s different. (어메리칸 소셜 볼룸 댄스, 다른 겁니다.)”

American Social Dance, 미국 사교춤의 본 고장인 이 곳에서 30년이 넘도록 미국인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는 한인이 있습니다. 바로 조 김 씨 입니다.

조 김 씨는 한국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사교 춤을 처음 배운 뒤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말합니다.

//조 김 씨//

“그 당시에 내가 연희 대학교에서 공수도, 지금 태권도라고 그러는데 그걸 가르쳤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 때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춤을 좋아해서 춤을 시작을 했는데.. 정식 춤은 아니고, 우리끼리 그냥 우리 아는 대로 춤을 추기 시작을 했는데…”

1956년 미국에 유학온 조 김 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사교 춤을 가르치는 댄스 교습실에 취직하게 됩니다.

//조 김 씨//

“그 당시 직장이라면 레스토랑 가서 접시닦이나 하고 그거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게 되면 이민국에서 인스펙트하러 왔을 때 식당 같은데 그런데 많이 오거든요. 거기 있다 보면 옷만 잘 입고 온 사람만 보면 이민국에서 온 것 같아서 도망가고 말이죠. 사람이 편하지가 못해서 아이디어가 생긴 것이 뭐냐하면 춤 학교에서 가르치면 거기는 오지 못할 거다...”

조 김 씨는 로스 앤젤레스에서 유명 댄스 교습실인 ‘아서 머리 (Arthur Murray)’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었습니다.

//조 김 씨//

거기서 반년을 가르쳤나?. 반년을 가르치다가 그 사람들이 하루는 물어요. 내가 저기 워크 퍼밋이 있느냐고.. 없다니까 그러면 문제가 되니까 그만 둬야 된다고 말이지.”

조 김 씨는 그 뒤 일본인 2세가 운영하는 도장에 태권도 사범으로 취직했지만 취업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조 김 씨//

“유학생으로 왔으니까 일을 못하게끔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날 쓰면서 나에겐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아요. 이용을 당했어요, 결국은.. 어쨌든 그 때 내가 자동차 사고로 큰 사고를 당했어요. 손, 발도 잘 못 쓰고 그렇게 되니까, 이제 태권도를 그만 두고 내가 좋아하는 춤이나 춰야되겠다, 그러고 춤 쪽으로 맘을 돌려 버렸죠.”

어차피 돈을 받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좋아하는 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한 조 김 씨는 인근 댄스 교습실에 찾아가 자원봉사로 일하겠다고 말합니다.

//조 김 씨//

“난 월급 필요없으니까 가르쳐만 달라. 그 대신 거기 가서 도와주고.. 그렇게 해서 열심히 배웠죠.”

조 김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후에도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퇴근 후에는 사교 춤 교습실에서 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조 김 씨//

“어려서부터 딴따라라 그러나? 그런 계통의 그런 데를 내가 원했다구요. 학교 선생이랑 소학교 선생이랑 부모들이랑 말이지, 좋은 머리를 갔다가 말이지, 제대로 쓰지않고 밥 빌어먹으려고 딴따라에다가 정신을 쓴다고 말이지, 막 야단치고 그래서 결국 공과로 돌아갔는데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내 마음은 그런 계통에 있었더랬어요.”

조 김 씨는 1970년대에 한국으로 일시 귀국합니다. 전기공학을 전공했던 조 김 씨는 한국에 텔레비젼 수상기 공장을 세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 회사의 지원 아래 한국에 들어가 공장을 세우기 위해 합작 상대를 물색했지만 쉽게 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조 김 씨//

“항상 만나면 연락을 해준다고 사람들이 말이지, 그러고는 해주지않고 항상 돈만 내놓으래. 내가 기술을 갖고 갔는데 왜 내가 돈을 내놔야 돼? 그네들이 와서 모셔가야 할 입장인데 말이지. 내가 가만 생각하니까 억울하고 그래서…”

조 김 씨는 1년여 짧은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워싱톤에 정착했습니다.

낮에는 정부기관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사교 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오랫동안 아서 머리 댄스 교습실에서 강사로 일하다 독립한 김 씨는 요즘에는 메릴랜드주 몽고메리군이 운영하는 교양 강좌 프로그램의 사교 춤 지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요일에는 인근 메릴랜드 한인 천주교회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 김 씨는 성당에서 가르쳐도 아무 문제가 되지않을 만큼 건전한 것이 사교 춤이라며, 한국에서는 마치 불륜이라도 조장하는 것 처럼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있어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조 김 씨//

“춤이란 걸 몰라서 그래요. 이건 일종의 예술이에요. 한국에서 그냥 사교란 이름만 붙이면 벌써 이상하게 가고 그러는데 사교란 것은 소셜 환경에서도 출 수 있는 그런 스텝을 만들어놓은 걸 말해요. 난잡하게 그냥 제멋대로 하는 게 아니고.. 스텝에도 댄스 스포츠는 큼직큼직하게 장소를 넓게 잡아서 그리고 에너제틱하게 움직이도록 스텝이 대개 만들어져 있어요. 그러나 어메리칸 소셜이란 건 사교환경이니까 사람들도 더 많이 우글우글하고 그런 좁은 장소에서 출 수 있는 스텝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소셜 볼룸 댄스라고 그러는데 그걸 마치 무슨 불량환경에서 쓰는 춤인 줄 알고 다들 오해하는데 노, 이건 예술이에요. 그리고 끝이 없어요. 배우는데 있어서..”

조 김 씨는 미국 사교 춤은 스텝의 종류가 1천개가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조 김 씨는 누구보다도 많은 춤을 알고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조 김 씨//

“어메리칸 소셜의 선생이 되려면 하여튼 춤이란 걸 다 할 줄 알아야 돼요. 왜냐하면 소셜 환경에 가면 딱 한가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 무슨 음악이 나올지 몰라요. 언제, 어떤 음악이 나오더라도 거기에 알맞는 춤을 출 수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아는 게 굉장히 많아야 돼요.”

조 김 씨는 춤은 예술일 뿐만 아니라 운동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조 김 씨//

“가장 이상적인 운동이고 왜냐하면 보통 운동에서 에어로빅스 엑서사이즈를 대개 레코멘드하길 20분을 계속해서 움직이라고 그랬잖아요.이 춤을 추는 엑서사이즈는 한 시간을 해도 끄덕이 없어요. 그러면서도 운동은 운동의 역할을 그대로 다하고…. 즐거운 음악을 들어가면서 싱글싱글 웃어가면서 운동은 운동대로 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이처럼 이상적인 운동이 없지요.”

아무리 춤을 잘 춰도 혼자서는 출 수 없는 것이 사교 춤입니다. 처음에는 조 김 씨의 부인도 함께 춤을 추면서 즐겼었습니다.

//조 김 씨//

“옛날엔 췄어요. 옛날엔 췄는데 내가 선생이니까 하도 잔소리를 많이 해서 힘이 들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하고 같이 추라고 자기 힘이 들어서 못 하겠다고 그래서.. 미안해서… 어쨌든 간에 딴 파트너 데리고 추죠.”

조 김 씨는 요즘 타이완 출신의 릴리 씨와 파트너가 돼서 함께 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릴리 씨//

릴리 씨는 10년전 조 김 씨의 사교 춤 강좌를 들으면서 김 씨를 알게 됐다며, 현재 댄스 파트너이자 보조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김 씨는 동양인으로서 서양 춤을 가르친다는 편견은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 김 씨//

“보통 춤 아니고 컨트리 앤 웨스턴, 카우보이 춤을 추는데 한번 문제가 있었어요.내가 인제 때때로 나이트 클럽에서도 가르쳤거든요. 청중에서는 벌써 술에 약간 취한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말이죠. 서양 사람들이 하는 컨트리 앤 웨스턴 춤을 네가 뭐라고 동양 사람들이 가르친다고 그러냐고 야유를 한다구요. 시작하기도 전에.. . 그런데 차차 시작해서 내가 가르치는 거 보고는 나중에 와선 사죄를 하는 거죠. 참, 베스트 티쳐라고 말이죠.”

조 김 씨는 초보자들을 가르치기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조 김 씨//

“초보자들은 아주 무거워요. 움직이는 게.. 그러니까 그네들을 처음에는 자기 보고 혼자서 하라고 원칙으론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가 가엾어서 내가 이렇게 잡고 끌어다닌다구요. 그러니까 거의 들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얼마 안 있으면 허리가 아파져요. 지금도 허리 아픈 게 그 때 그렇게 몇 년을 했기 때문에 허리가 아파졌어요.”

여성들을 상대로 춤을 가르치다 보면 인기가 너무 많아서 괴롭다는 행복한 고민도 생깁니다.

//조 김 씨//

“따르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그렇게 되면.. 선생이니까 암만 해도... 때때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적당히 해결하는 게 참 골치가 아프다구요. 잘못 허트하면 화가 나면 그만 두고 가버리고 말이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벌써 해서 경쟁을 하는 거에요. 자기들끼리..”

춤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조 김 씨는 말합니다. 처음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수줍어하던 사람들이 춤을 배우면서, 차차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변하는 걸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조 김 씨//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에요. 그냥 촌스럽고 이렇게 얌전하고 이렇게 와서 가만히 앉아있는 거에요. 레슨만 되면 이렇게 절하고 와서 레슨받고 그랬는데. 하루는 나보고 그래요. 선생님, 저 여기 등록하기 전에 밑으로 몇번 왔다갔다 했는데 이 계단을 용기가 없어서 못 올라왔대. 그러던 사람이 차차, 차차, 그 다음부터 새로 온 생도가 있으면 자기가 가서 인사하고, 같이 춰주고… 차차 웃음이 얼굴에 돌고..”

바로 그같은 점 때문에 30년 이상 춤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조 김 씨는 말합니다.

//조 김 씨//

“일종의 중독이라고 그럴까요, 아주.. 음악이 이렇게 나오면 플로어에 턱 나가서 파트너를 콱 잡으면 딴 세상이 되는 거에요. 세상 맛을 다, 뭐 어려운 것도 그 순간에 다 잊어버려요. 정말로 즐거운 시간, 그 순간부터 즐거워지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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