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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김형제 상회 I - 과수업으로 성공해 한인 사회에 큰 기여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1920년에 설립돼 크게 성공한 과수 농장과 묘목판매, 과일포장 수송 사업체 김형제상회를 소개해드립니다.

김형제 상회는 배재학교 출신으로 1903년 첫 이민선의 통역으로 도미한 김형순과 그의 부인 김덕세가 1916년부터 Reedley에서 시작한 과일 농장에 현 경기고등학교인 한성중학교 출신이며 김덕세의 이화학당 스승으로 1914년에 도미한 김호가 합류해 1920년에 설립한 사업체입니다.

"이들은 미국인 원예 전문가 Anderson이 자두와 복숭아를 접목하여 발명한 Nectarine의 특허를 구입해 이 털 없는 신종 Nectarine을 재배한 뒤 Le Grand와 Sun Grand란 상표의 특허 과일을 생산 하여 미 전국에 판매 하여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김형제 상회는 생산된 과일을 포장해서 전국의 과일 도매상에 판매하는 Packing House회사도 설립하여 종합 과일 농장도 운영했습니다. 이 회사가 경작한 과수원은 6개 처소에 500에이커에 달했고 수확기에는 한인 농장 인부 만도 300명을 고용했으며, 120대의 트럭으로 전국으로 수송했습니다. 이 농장은 하와이 농장 이민출신뿐 아니라, 해방 후 도미한 유학생들도 여름방학 때 마다 이 농장에서 일해 학비를 벌기도 했습니다. 김형제 상회의 성공은 후에 한인 사회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

"김형제상회가 성공함으로써 김형순과 김호는 미주 한인 최초의 100만 장자가 되었고 여기서 축적된 재력은 독립자금 형성에 크게 기여하게 되며 또한 김호와 김형순 자신들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됨과 동시에 해방 후에는 LA의 한인사회 발전에 절대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형제상회는 Reedley교회 부흥에도 적극적이어서 교회 건립에 크게 이바지했는데 교회에는 한국학교도 세워 어린이들에게 모국어와 문화도 가르쳐 주었는가하면 교회 앞에는 노동자 숙소도 건립해 어려운 한인들을 도왔습니다. 김형제 상회는 특히 중가주지역에서 농장 일에 종사하다 가족도 없이 사망한 많은 한인들에게 Reedley묘소의 묘자리를 마련해주고 장례도 치러주었습니다.

다음 주 이시간에는 김형제 상회를 설립한 김형순과 그의 부인 김덕세, 그리고 김호에 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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