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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 -3회- '평양을 떠나며'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 최원기 기자가 둘러본 북한은 사회 전체가 사망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비효율적인 정치체제 였습니다. 최고 지도자의 교시는 심지어 역사 해석까지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입니다.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 세 번째 마지막 순서입니다.

방북단이 4박5일 간 평양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은 양각도 호텔 3층의 양복점이었습니다. 이 곳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맞춤 양복을 해 입을 수 있는 작은 양복점이 있었는데 가격이 아주 좋았습니다. 위아래 싱글 맞춤 양복 가격이 1백30달러였습니다.

서울에서 웬만한 기성복이 30만원, 3백 달러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3분의1 가격에 불과했습니다. 또 양복점을 운영하는 여자 재단사의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기자도 여기에서 양복을 한 벌 해 입었는데 그 솜씨가 서울의 일류 양복점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 양복점이 돈을 더 벌고 싶어도 벌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양복 가격이 싸고 재단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같이 간 방북단 1백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양복을 맞추기 위해 이 곳에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2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양복감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기자는 이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양복점이 관광객들에게 양복을 많이 맞춰줘서 외화를 많이 버는 것은 재단사 개인에게도 좋고 양각도 호텔에도 좋고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양복점은 당의 지시와 장군님의 교시가 없으면 양복감도 일손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기자와 일행인 한 교수는 이를 보고 “북한이 자원배분을 엉망으로 해 경제가 비효율적 ”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체제의 비효율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었습니다. 기자가 묵었던 양각도 호텔은 1995년에 세워진 북한의 대표적인 특급 호텔입니다. 그러나 47층에 1천1개의 객실 수를 자랑하는 이 호텔은 불과 3백개 객실에만 손님이 들어 있었습니다. 무려 70%가 비어있는 것입니다. 반면 노동당 간부 수십명은 돈 한푼 내지 않고 호텔에 묵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호텔 지배인에게 “만일 서울에서 호텔이 이 정도로 비어있다면 지배인이 당장 쫒겨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지배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나의 임무는 손님을 편히 모시는 것이고, 손님을 불러 모으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체제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교시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모든 일상사에 교시를 내리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갔습니다. 기자 일행은 방북 나흘째 되는 날 대동강변의 냉면 전문식당인 옥류관을 찾았습니다.

냉면은 소문대로 훌륭했습니다. 우선 육수가 심심하면서 그 맛이 깊었습니다. 또 메밀로 된 면 발은 투박하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냉면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자 안내원은 곧바로, `맛이 좋은 것은 장군님의 교시 덕분'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육수를 만드는 방법과 면발의 배합 비율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냉면을 먹을 때 식초를 육수에 치지 말고 면 발 위에 치라는 것까지 지시했다고 합니다.

모두들 안내원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내원의 심각한 표정으로 미뤄볼 때 이는 사실인 듯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교시 정치’는 냉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역사 해석도 김 위원장의 교시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바뀌었습니다.

기자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방문하는 길에 북한이 고려가 삼국통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자가 알기에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으로 해왔습니다. 안내원에게 왜 삼국통일을 한 것이 신라가 아니냐고 묻자 김정일 위원장의 가르침으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독점하고 그의 견해에 따라 역사를 바꾸는 것은 분명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학문의 영역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군림할 경우 학문의 생명인 창의성과 다양성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당의 선전선동도 북한체제가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텔레비전을 기준으로 할 때 통상 70~80%가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활동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한 국가의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존경심을 갖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존경심 수준이 아니라 지도자를 거의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가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될 때 그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적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외부세계에 대한 정확한 소식과 정보를 전해줘야 할 보도 매체가 50년도 더 묵은 항일 빨치산 얘기를 매일 고장난 레코드처럼 틀고 있는 것도 북한의 발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생각됐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역사발전의 주체로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주체사상에도 180도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북한사회에서 주민들은 모든 주체성과 창의성을 잃고 김 위원장에게 끝없는 끊없이 찬양을 바쳐야만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4박5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평양 순안공항에 나왔습니다. 고려항공 민항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이렇게 비효율적인 체제를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동시에 만일 북한이 지금처럼 대외적인 고립과 내부의 선전선동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생각 밖으로 체제가 오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쪽 생각이 맞는지는 장차 역사가 알려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난 6월28일부터 나흘 간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의 소리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를 세 차례로 나눠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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