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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리포트] 북한 방문기 -2회- ‘평양의 신세대 안내원’


남한으로부터 온 손님들을 안내하는 북한측 관계자들은 대부분 최고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기본개념이 없는데다, 바깥 사정에도 매우 어두웠습니다. 지난 6월28일부터 나흘 간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 등지를 둘러본 `미국의 소리' 방송 최원기 기자의 방북기, 두 번째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4박5일 간의 방북기간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였습니다. 1백여명의 방북단은 모두 4개조로 나눠서 버스 4대에 나눠타고 평양과 묘향산을 다녔습니다. 버스 한 대에는 대개 남측 인사 30명이 타고, 북측 안내원이 3~4명 동승했습니다.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은 남북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통성명을 하고 날씨, 건강, 가족같은 비정치적인 얘기를 하며 탐색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안면을 튼 북측 안내원은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서울의 정치상황을 집중적으로 캐묻고, 남측 사람들도 북한의 자금이 동결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BDA은행이나 핵 문제 등을 물었습니다.

기자는 옆 자리에 앉은 곱상한 안내원으로부터 북한 연예계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김 선생’이라고 밝힌 이 안내원에 따르면 요즘 북한에서 한창 뜨는 영화는 ‘평양 날파람’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일제시대에 평양의 태권도 고수가 일본과 싸우는 항일 액션극으로, 무려 6백만명이 관람했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서울에서도 널리 알려진 북한 노래 ‘휘파람’을 부른 전혜영이 왜 요즘은 노래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 선생은 전혜영은 요즘은 뒤로 물러나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며, 요즘 한창 뜨는 가수는 ‘김정녀’라고 귀띔해 줬습니다. 그래서안내원의 추천에 따라 보천보 전자악단이 반주를 한 김정녀의 CD를 한 장 샀습니다.

이번 방북길에 만난 안내원들은 과거에 만났던 북한 안내원들과 달랐습니다. 기자가 9년 전인 1998년 금강산 관광길에 만난 북한 안내원들은 최소 50살을 넘긴 중장년 층이었습니다.

이들은 금강산을 찾은 남측 관광객을 상대로 ‘연방제 통일방안’과 ’주한미군’ 등을 주제로 곳곳에서 입씨름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평양에서 만난 안내원들은 모두 30대의 젊은 신세대였습니다. 북한 내부에서 세대교체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안내원들은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식량사정이 어떠냐고 묻자 ‘긴장된 상태’라고 대답했습니다. 배급이 가끔 안 나오는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식량을 구하러 1주일에 한두번은 평양 시내에 설치된 시장에서 쌀을 구입한다고 했습니다.

노동당의 젊은 엘리트가 이 정도니 일반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더욱 빡빡한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도로 옆 하천, 저수지, 웅덩이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주민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방북 사흘째,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걸리는 묘향산을 가던 중 거리에서 본 차량은 9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고위 당 간부가 타고 다니는 벤츠 승용차 2대와 방북단을 태운 관광버스 4대, 그리고 트럭 2대와 낡은 버스 1대가 전부였습니다.

평양은 19개의 행정구역이 있는데 전기가 부족해 구역별로 시차를 두면서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대동강변에 높게 솟아 있는 주체사상탑도 오후 11시가 되면 불이 꺼졌습니다. 수도인 평양이 이 정도니 농촌지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안내원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미제가 침략 책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그러나 미국의 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의 신세대 안내원들은 과거의 중장년층 안내원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젊은데다 비교적 솔직했고,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북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북한체제의 핵심적 모순과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지금 직면한 최대 문제는 대외적으로는 외교적 고립이고, 내부적으로는 경제난입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핵포기를 전제로 한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개혁,개방을 통한 시장경제 도입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들은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이를 풀어가는 구체적인 해법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북한의 안내원들은 시장경제 체제의 기초인 ‘가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가격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가도 잘 모르고 이윤도 몰랐습니다. 또 국가가 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할 때 가격체계가 어떻게 왜곡되고 물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도 몰랐고 아예 생각해 본적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격을 모르니 금리도 모르고, 인플레나 환율도 몰랐습니다.

안내원들은 바깥 사정에도 어두웠습니다. 기자가 만난 10명의 안내원 중 이웃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 2명만이 남북 회담차 서울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이며 경제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가격과 금리 같은 초보적인 경제지식도 없고, 외부세계의 사정에도 어두운 북한의 엘리트들이 21세기의 험난한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새삼 걱정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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