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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이정희 씨 – 미국서 한국 노인들의 복지시설 개척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 있는 포레스트 글렌 노인병원 입니다. 바퀴의자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간호사들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 할머니의 모습도 눈에 띕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서툰 한국말로 상태를 묻는 간호사에게 할머니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은 조금 아프다고 말합니다.

포레스트 글렌 노인병원은1백30여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각 환자의 상태에 따라 맞춤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어주는 미용실, 또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재활센터도 있습니다.

2층에는 새롭게 단장한 재활병동이 환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식 창살 문양의 창문과 엷은 베이지색의 마루가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포레스트 글렌 노인병원 원장인 이정희 씨는 이 곳을 포함해서 다섯개 노인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정희 씨//

“저는 두 개의 노인 의료 데이케어 센터 (day care center), 그러니까 아침에 오셔서 저녁에 가족들이 오셨을 때 집에 가시는 두 개의 센터를 갖고있고, 하나는 양로원, 하나는 노인병원이라고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요. 물리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장기 입원에서부터 숏텀 (short term, 단기) 입원까지 하면서 노인질환성을 고치는 센터를 하고, 하나는 물리치료 회사를 하고있고 지금 다섯개의 오가니제이션 (organization,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70년 미국에 유학온 이정희 씨는 처음에는 신문방송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미국 양로원을 방문한 뒤 느낀 바가 있어서 노인복지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이어 대학원에서 병원운영학을 전공한 이정희 씨는 1987년 노인병원, 종합병원 원장 자격증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노인복지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정희 씨//

“우리 나라에서는 양로원 하면 뭐 가족도 없고, 돈 없고,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돌아가시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들어가는 걸로 알고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양로원을 한 28년전에 방문했을 때 느낀 거는 아, 미국 노인들은 이런데 가서도 많이 케어 (care, 보살핌)를 많이 받고있고 그래서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는데 우리 노인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한국에도 발전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하고,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서 사실은 양로원을 하려고 시작한 공부였어요.”

이정희 씨는 처음 노인복지 사업에 뛰어들었던 당시에는 대부분 의사들, 특히 유태인들이 업계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나이 젊은 여자가, 그것도 동양 여자가 노인병원을 운영한다고 나서니, 드러내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정희 씨//

“제가 이걸 인수받을 때 인종차별을 너무나 많이 느꼈어요. 이븐 (even, 심지어) 제가 데리고있는 직원들 한테도 많이 그런 걸 느껴서, 특히 의사들, 의사들하고 코퍼레이트 (cooperate, 협력) 하기가 참 어려웠어요.”

이정희 씨는 환자들과 의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하루 열여섯 시간, 열일곱 시간씩 일하면서,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합니다. 이정희 씨는 유교사상에 따라 노인들을 공경하고, 늘 성실하게 일함으로써,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차츰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정희 씨//

“동양적인 사고와 그리고 미국적인 케어 (care, 보살핌)를 컴비네이션 (combination, 합치다)해가지고 환자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제 슬로건이기 때문에, 직원들도 무조건, 저희 직원들 교육시킬 때는 너희들 부모들처럼, 너희들 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대하면은….”

환자를 친부모, 그리고 가족처럼 대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정희 씨가 운영하는 양로원과 병원은 지금 워싱톤 일대에서 신뢰도 1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5달 전에 입원한 여든세살 정석순 할머니도 모든 면이 만족스럽다고 말합니다.

//정석순 씨//

“저 지내기 좋습니다. 모든 경치도 좋고, 음식도 한국 음식이 나와서 참 맛있게 먹어요. 아주 편안해요. 집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수족이 있으니까 일을 하잖아요. 여기는 편안히 앉아서 주는 밥이나 먹고, 좋습니다, 아주…”

처음에 동양 여자라고 무시하던 의사들도 이제는 20년 세월을 계속 함께 일할 정도로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포레스트 글렌 노인 병원의 의료국장인 로젠바움 박사는 이정희 씨가 제일 처음 인수해 운영한 랜돌프 힐즈 양로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다고 말했습니다. 로젠바움 박사는 이정희 씨가 운영하는 시설은 신뢰도 면에서 틀림이 없기 때문에, 포레스트 글렌 의료국장 자리가 났을 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정희 씨는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가슴 아픈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애써 돌봐드렸던 환자가 숨을 거두게 되면 마치 친한 친구나 친척을 잃은 듯한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인종을 막론하고 자식이나 친척들이 물려받을 재산만 생각하는 걸 볼 때는 비정함 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정희 씨는 20년전 혈 투석을 거부하며 죽기를 바라던 환자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정희 씨//

“혈 투석을 하루 아침에 거절하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직원들은 이 분이 그것만 하면 뭐 노 프라블럼인데 (no problem, 문제없는데), 그래서 제가 왜 그걸 거절하냐 그랬더니, 자기 좀 도와달라고, 몇십년을 이걸 했는데 호프 (hope, 희망)도 없고, 이거 하는 게 너무 식크니까 (sick, 질렸으니까) 렛 미 다이 (let me die), 나 좀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러는데 제가 너무나 많이 그냥 울었어요.”

이정희 씨는 그런 경우 미국 법에는 명확하게 정해진 것 없이 직계 가족의 결정에 따르게 돼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정희 씨//

“그럴 때는 직계 가족이, 그러니까 6촌 조카에요. 필라델피아에 있는 분들한테 저희가 전화를 걸어서 미팅 (meeting, 회의)을 갖자고 그랬죠. 그래서 이모님을 설득을 해달라고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첫번째 리스판스 (response, 응답)가 당신네들이 입원비 받기 위해서 연장하는 거지, 본인이 죽기를 원한다는데 왜 그렇지 않느냐고, 왜 그런 걸 도와주지 않느냐고 이러는 거에요. 너무 언익스펙티드한 (unexpected, 기대하지 못한) 리스판스가 나와서 좀 놀라고 그랬지만 그 뒤에는 그 수많은 재산이 본인한테 올 수 있다는 그런 것도 있고… 변호사를 시켜서 빨리빨리 그걸 진행을 시키더라구요.”

이정희 씨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혈 투석을 중단한 환자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정희 씨//

“고정 음식에서 유동 음식으로 하고, 유동 음식에서 리퀴드 (liquid, 액체)로 가는 동안에 제가 늘 매일매일 20일을 그 후로 사셨는데, 매일 매일 겪어야했던 그런 거는… 제가 그 때 이걸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 때 굉장히 인간적인 면에서 그래서 제일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고, 이런 너싱 센터 (nursing center, 양로원)나 노인 병원도 인간이 모여서 사는 데기 때문에 간통 사건도 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끼리 레이프 (rape, 강간) 사건도 나고.. 다 그래요. 그래서 항상 신경이 스물네시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이정희 씨는 부모에게 문병오는 자식들이 그리 많지않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않는 것은 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희 씨//

“노인이 되면 굉장히 많이 쓸쓸해 하세요. 그래서 용돈 주고 맛있는 거 사드리는 것 보다 그저 자주 찾아가 뵙고, 그리고 얼토당토한 말씀을 하시더라도 인내있게 들어주는 거 그게 베스트 프렌드 (best friend, 제일 좋은 친구)에요.”

이정희 씨는 노인들이 완전히 회복해서 퇴원할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정희 씨//

“가끔은 나아지셔갖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 그럼 이제 그 분한테 제가 ‘할머니,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그러죠.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제일 보람이 있고, 고부간의 갈등, 가족불화로 해서 어디로 가셔야되는 분들을 모실 때가 또 마음이 기쁘구요.”

이정희 씨는 포레스트 글렌 노인병원을 차츰 한인들을 위한 시설로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희 씨의 얼마전 손자의 돌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대규모 투자금융 회사의 직원으로 한국에서 유명 아나운서와 결혼해 살고있는 큰 아들 집에 다녀온 것입니다. 이정희 씨는 현재 둘째 아들이 병원운영을 돕고 있다며, 한인 2세들 중에서도 노인복지 사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정희 씨//

“노인들하고 같이 일하고 한다는게 어트랙티브 (attractive, 매력적) 하지 않거든요. 많이 인내가 필요한 거고… 아직은 후배들이 안 나와서 안타깝습니다.

20년전 랜돌프 힐스 양로원을 인수하면서 노인복지 사업을 시작한 이정희 씨, 이제 다섯개 시설에 환자 수 5백명, 직원 수 6백명에 이르는 큰 규모로 성장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정희 씨는 아직 한가지 숙제가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이정희 씨//

“우리 이민 1세대, 그러니까 저 같은 분들, 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에 오신 분들이 거의 리타이어 (retire, 은퇴)하실 때가 됐어요. 우리가 모여서 한국말 하고, 한국 화투 치고, 또 한국 사람끼리 모여서 수영할 수 있는, 그런 아파트를 지을려고 지금 전부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지는 벌써 인수해 놓고,제가 리타이어하기 전에 해야할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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